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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암어문학회 돈암어문학 돈암어문학 제15집
발행연도
2002.12
수록면
7 - 38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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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시작 초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오규원이 시의 언어에 대한 고민의 과정에서 도달한 지점은 매우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가 얽혀 있는 곳이다. 그곳은 인식론과 기호론과 존재론이 서로 충돌하면서 갈등을 일으키는 지점이다. 오규원이 말하는 '날이미지'는 '존재의 살아 있는 의미망'이다. 오규원이 말하는 '존재의 살아있는 의미망'에 이르는 것이 가능하려면 그 존재를 아무런 인식론적 전제 없이 직접 서술할 수 있어 마치 그것이 스스로 있는 것처럼 되어야 한다. 그러나 시는 언어라는 질료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오규원이 이른바 '은유적 수사법의 축'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다만 그것을 중심축에서 주변축으로 이동시키는 것도 그러한 사정에서 연유한다. 이제 오규원의 시쓰기에서 중심축을 차지하는 것은 "사물을 묘사하고 서술할 때 주로 사용하고 있는 환유적 수사법"이다. '환유적 수사법'이 주도하는 서술을 통해서 오규원이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사물과 세계의 생생한(혹은 살아있는) 표정과 같은 것이다. 한 인물의 표정, 즉 성내거나 슬퍼하거나 즐거워하는 그런 표정은 그 자체로 이미 정해져 있는 개념 같은 것이 아니다. 슬퍼 보인다는 점에서는 여러 인물의 표정이 유사할지 모르나, 그들 각각의 표정은 그 나름의 고유함을 간직하고 있으며 따라서 슬픔 자체도 다르다. 한 인물의 표정은 그의 얼굴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요소들의 배열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오규원은, 사람의 표정과 마찬가지로, 사물들에게는 그 자체의 언어이며 스스로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의 배열에서 발생하는 저마다의 표정이 있다고 믿는 듯하다. 그런 맥락에서 오규원의 시쓰기는 사물들과 세계의 감각 가능한 요소들의 배열을 완전히 복원함으로써 그것들의 관상학을 회복하려는 시도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세계와 사물의 관상학을 복원하려는 오규원의 시도는 작품 자체에서는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굴절되는 경향이 있다. 오규원이 『조주록』의 구절에 근거하고 있는 '살아있음'은 '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의미 방향으로 굳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의 내부에 다양한 의미화의 방향(길)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살아 있는 것이다. 그러한 '살아있음'은 모호함과 불투명성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경이를 체험하게 한다. 「아이와 망초」에서 세계와 사물은 '살아있음'으로 정(定)해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시인의 애초 의도와는 다르게 사물과 세계는 오히려 생생한 표정을 잃게 된다. '날이미지'로 이루어진 오규원의 작품들에서는 또 다른 위험도 포착된다. 시가 '날이미지'를 지향하게 되면서, 그의 사고와 시작의 중요한 작동 계기 가운데 하나인 '부정의 역학'이 자취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 때문에 '날이미지'로 구축된 작품들은 대부분 화해의 밝은 빛깔을 띠고 있다. 화해(혹은 구원)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스스로 화해의 빛을 반짝이는 공간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것은 이 어둡고 암울한 시대에 이른바 등대와도 같은 희망의 상징이 될 수 있을까? 대답은 시인의 몫이지만, 이 지점 에서 우리는 앞서 살펴본 「세헤라쟈드의 말」을, '당신의 죽음'을 가둔 '내 자궁'을 상기하게 된다. 오규원은 시와 현실의 진정한 화해와 시의 초월이라는 본질적인 문제에 직면하여 '날이미지'의 구축이라는 작업을 통해 그 문제를 해소하고자 하였다. 다시 말해 비켜간 것이다. '날이미지'의 시 역시 조작되고 왜곡되는 언어와 세계의 현실에 맞서려는 전투적 열정의 소산임은 물론이다. 필자가 보기에, 이제 오규원의 '날이미지'는 시의 자궁 속에 다시 가두어져 그 무엇인가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되는 지점에 이르렀다. 우리는 앞으로 오규원의 시쓰기가 어떤 방향으로 어떤 궤적으로 그리며 나아갈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방향이 부정적 현실과 거기에 맞서려는 전투적 열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벡터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의 논의 장으로 그를 초청하고, 또 그의 시가 부르는 호출에 우리가 응해야 하는 것도 그러한 원초적 신뢰 때문일 것이다.

목차

1. 문화산업 시대와 시인의 고뇌

2. 오규원의 시와 부정성의 시학

3. ‘날 이미지‘의 현상학

4. 시적 관상학의 가능성과 한계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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