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경주사학회 경주사학 慶州史學 第24·25合輯
발행연도
2006.8
수록면
313 - 345 (33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학문적으로는 성리학 뿐 만아니라 다양한 학문을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정치활동에서도 다양한 인물들과의 교류를 볼 수 있다.
붕당이 성립하는 출발점에서 입조하여 당쟁의 와중에 있었지만 중립적 입장을 지키려 하였다. 그러나 이항복은 정치 무대의 중심에 있었던 만큼 당쟁과 무관하게 비켜서 있을 수 없었다. 결국은 서인의 중심에 위치하게 되었다. 서인의 영수이면서도 중도를 지키고 정론을 펴고자 하였다. 실제로 남인인 유성룡 등 다른 정파의 인물들의 주장이 옳다고 판단되면 적극적으로 뜻을 같이 하였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전략적 판단을 기민하게 하여 큰 방향을 옳게 잡도록 하고, 또한 급박한 사태를 무사히 넘긴 일이 여러 차례 있었다.
광해군의 즉위와 함께 대북세력의 탄핵을 받게 된다. 이항복은 서인의 영수로서 남인들까지 결집하여 대북세력에 대항하게 된다. 이어 폐모론이 일어나자 유교적인 모자간의 도리를 들어 극렬하게 반대함으로써 북청에 유배를 가 그곳에서 최후를 맞았다.
이항복의 죽음은 그의 문인들의 반발을 가져왔다. 이어지는 대북의 여러 가지 실정은 이항복의 문인에 의하여 인조반정이 일어나는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목차

논문 개요
Ⅰ. 머리말
Ⅱ. 생애와 학문적 성향
Ⅲ. 백사와 기축옥사와의 관계
Ⅳ. 선조대 서인과의 관계
Ⅴ. 광해군대의 서인의 영수로서의 역할
Ⅵ. 맺음말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