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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구 정신문화연구) 정신문화연구 2007 봄호 제30권 제1호 (통권 106호)
발행연도
2007.3
수록면
307 - 334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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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대원군의 천주교탄압의 경위를 분석함으로써 대원군 정치권력의 성격을 고찰한 글이다. 본 논문은 다음과 같은 의문에서 시작된 것이다. 천주교박해는 병인양요를 불러일으키는 등 조선이 이른바 ‘쇄국정책’을 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병인박해(1866)로 불리는 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은 그 사건이 가지는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단지 기정사실로만 받아들여질 뿐 정치학적으로 깊은 검토가 이루어졌다고 하기 어렵다. 흔히 알려진 바와 달리, 대원군은 오래도록 천주교와 친숙한 관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원군이 천주교를 왜 갑자기 그것도 그토록 심하게 탄압했던 것일까. 그리고 그것의 국내외적 현실정치적 함의는 무엇인가.
이 논문에서는 ‘대원군의 선교사 접촉 시도 사건’을 실마리로 하여 이러한 의문에 대해 기존의 설명방식과는 다르게 접근하고자 했다. 그 결과 본고는 다음과 같은 해석을 내릴 수 있었다. 처음에는 대원군의 정치적 위상은 의외로 그렇게 높지 않았다. 대원군은 애초에 천주교에 친숙하였으며, 선교사를 통해 프랑스와 대러시아 동맹 가능성을 진지하게 타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태가 예상치 않은 상황으로 급전하면서 대원군의 이런 구상이 극적으로 공개될 상황에 놓이게 된다. 결국 대원군은 정치적으로 자기와 공통된 이해 관계에 놓여있던 대왕대비의 도움 등에 힘입어 천주교 세력을 희생양으로 삼아 천주교 탄압정책과 배외정책을 갑작스럽고도 극단적으로 추진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자신의 천주교와의 관련소지를 만천하에 공개적으로 부인하는 행동을 취하게 된다. 이러한 행동은 이후 연쇄적으로 외세와의 대결로 이어졌고 대중들에게 정치적 일체감과 승리감을 맛보게 함으로써 대원군의 정치적 리더십에 대한 지지를 강고한 것으로 만들었다. ‘거대한 전환’의 시대상황에서 이러한 배타적 정치공간의 창출과 권력집중은 대원군의 개혁을 보다 강력하게 추진하는 기반이 되었으나 동시에 조선이 유연하게 타협하고 조정해나갈 여지를 현실정치의 장에서 거의 봉쇄해버리는 돌이키기 어려운 결과를 빚어내는 것이기도 했다.

목차

Ⅰ. 문제의식의 소재
Ⅱ. 수렴청정기 대왕대비의 비호와 대원군의 권력 실세로의 부상
Ⅲ. 대원군의 선교사 접촉시도와‘예기치 않은’ 사태의 전개
Ⅳ. 배외(排外)의 배타적 정치공간의 구축과 권력의 집중
Ⅴ. 맺음말: 전환기 대원군 리더십의 패러독스
참고문헌
국문요약
English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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