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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역사문화학회 지방사와 지방문화 지방사와 지방문화 제12권 제1호
발행연도
2009.5
수록면
411 - 455 (45page)
DOI
10.17068/lhc.2009.05.12.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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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은 내전적 성격을 갖는 전쟁이었다. 특히 인민군이 점령했던 남한 지역에서는 우익과 좌익으로 나뉜 민간인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이 벌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 글은 그동안 이 문제를 농촌 마을 차원에서 다룬 논문들의 연구 결과를 정리하고, 앞으로의 연구 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전쟁기 각 농촌마을에서 빚어진 좌우충돌의 사례를 보면, 그러한 충돌이 일어난 배경에는 크게 3가지 갈등이 있었다. 첫째는 마을 내부의 서로 다른 신분간의 갈등, 계급간의 갈등이었다. 조선시대의 신분제는 19세기 말에 제도적으로는 폐지되었지만,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여기서 빚어진 양반계층과 평민 혹은 천민 계층 간의 갈등은 한국전쟁의 와중에 폭발하였다. 지주와 소작인·머슴 간의 계급 갈등 또한 중요한 충돌 요인이 되었다. 물론 일부 지주들은 오히려 소작인들에 의해 보호를 받기도 했지만, 인민군과 지방 좌익들은 소작인들과 머슴들에게 계급의식을 불어넣고, 소작인들과 머슴들로 하여금 지주에 대항하여 싸우도록 부추겼다.
둘째는 친족간의 갈등, 마을간의 갈등이었다. 즉 동족마을 내부에서의 친족 내부의 계파 사이에 빚어진 갈등이 폭발한 경우들이 있었고, 또 신분·계급·성씨 등을 달리하는 마을간의 오랜 세월에 걸친 갈등이 폭발한 경우들도 있었다. 하지만 친족간의 갈등은 그리 심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친족들끼리는 서로 보호하려는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서로 경쟁관계에 있던 친족이나 서로 다른 성씨들은 평소의 원한을 전쟁기에 폭발시켜 보복에 나서기도 했다.
셋째는 기독교도와 공산주의자들 간의 갈등이었다. 인민군과 토착 공산주의자들은 기독교도들을 아편이라 생각하여 부정적으로 바라보았으며, 기독교도들 가운데 해방 이후 우익 단체에 참여한 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들을 위험한 세력으로 간주하였고, 이것이 학살로 이어졌다.
한편 한국전쟁기 마을에서 빚어진 충돌에는 마을의 지식층, 지주와 같은 지도자들의 영향력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그것은 농촌 마을 주민들의 문맹률이 높은 상황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남북한의 국가권력이 깊숙하게 개입하여 갈등을 부추겨서 서로간의 충돌로 유도하기도 하였다. 남북의 국가권력은 아직 자기 기반이 취약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어느한 쪽을 분명하게 선택하라고 강요함으로써 스스로의 기반을 강화하려 하였다.

목차

【초록】
1. 프롤로그
2. 전쟁과 마을 주민간의 갈등 구조
3. 마을지도자·국가권력과 전쟁
4. 전쟁 이후의 마을
5. 에필로그 - 연구 방법론의 문제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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