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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동전 (제주대학교)
저널정보
역사문화학회 지방사와 지방문화 지방사와 지방문화 제13권 제2호
발행연도
2010.11
수록면
301 - 328 (28page)
DOI
10.17068/lhc.2010.11.13.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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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1273년(원종 14)부터 1374년(공민왕 23)까지 100여 년 간 몽골의 직ㆍ간접적인 통치를 받았다. 이 시기에 몽골의 일부 사람들이 통치자(제주를 다스리는 사람), 군인, 목호(말을 키우는 사람), 유배인의 신분으로 제주에 정착하였다. 제주에 건너온 그들의 후손들은 본관을 「大元」이라 칭하였다. 제주읍지류에서는 趙ㆍ李ㆍ石ㆍ肖ㆍ姜ㆍ鄭ㆍ張ㆍ宋ㆍ周ㆍ秦 등 10개 姓 외에 康ㆍ佐씨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외에 조선후기 제주지역 호적중초에서는 車ㆍ洪ㆍ徐씨가 추가로 나타났다. 19세기 중반 전후의 호적자료에는 대원 본관으로 姜씨와 佐씨가 강하게 남고 있었다. 어떻든 19세기에 들어오면서 점차 ‘대원’ 본관은 사라지지만, 일부의 성씨는 19세기 후반까지 ‘대원’ 본관을 유지하고 있었다.
가문 분석을 통해서 볼 때, ‘대원’ 본관을 지속해 가는 가문의 경우에 校奴, 畓漢, 牙兵, 募軍, 果直, 群頭, 席匠 등의 職役을 칭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들의 사회적 지위 상승은 쉽지 않았다. 다만 대원 본관들 가운데 일부의 가문은 ‘大元姜民’에서 ‘晋州姜氏’로 본관을 바꾸는 등 ‘대원‘ 본관에서 벗어나려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이는 제주사회에 마지막 남아 있던 대원 본관 가문들이 19세기 제주사회에 적응해 나가는 삶의 한 방식이었다.

목차

[초록]
1. 머리말
2. 제주지역 「大元」 본관의 역사적 배경
3. 「大元」 본관 家門의 사회적 지위와 변화
4.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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