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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韓盛旭 (한국문화유산연구원)
저널정보
한국문화사학회 문화사학 文化史學 第34號
발행연도
2010.12
수록면
87 - 109 (2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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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는 고려의 창건과 비슷한 시기에 생산되어 고려의 성장과 함께 발전하며 고려의 쇠망에 맞추어 퇴락하고 있다. 따라서 시대상을 잘 반영하고 있어 고려 사회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 가운데 하나이다. 康津은 청자가 생산되기 시작하는 단계부터 그 기술이 유입되어 퇴장하는 시기까지 청자를 생산하고 발전시켰던 가장 대표적인 窯場이다. 또한 국가 재정과 청자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大口所와 七良所가운영되어 국가의 통제와 토착세력의 관리 하에 품질이 관리되었다. 특히 이들 所가 설치되었던 耽津縣은 監務가 파견되지 않아 국가의 직접 통제보다는 지방세력 또는 중앙세력과 결탁된 지방세력에 의해 운영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康津이 청자생산의 중심이 된 것은 월등한 기술력으로 왕실 등 소비층의 미감에 맞는 청자를 생산하였고 풍부한 물산으로 청자에 대한 이해와 욕구가 강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바닷길을 통한 선진 기술의 신속한 유입과 용이한 원료 수급, 편리한 유통 수단 등이 발전을 촉진시켰다.
고려 전기 康津과 長興, 海南 지역을 관할하였던 靈嚴郡은 커다란 세력권을 형성하면서 全羅道 서남부의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특히 靈嚴은 고려 전기 청자생산의 중심지인 耽津縣과 黃原那을 영역에 포함하고 있어 도자 산업의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어 주목된다. 고려 중기가 되면 大口所는 靈嚴郡에서 長興府로 소속이 바뀌면서 기술이 더욱 발전하여 全盛期 翡色靑瓷를 생산하는데, 이 시기 所制度가 점차 붕괴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러나 고려 후기가 되면 收取體制의 문란과 倭寇의 침입 등 대내외적인 요건에 의해 所의 해체가 더욱 가속화되는데, 大口所 역시 匠人의 流離를 가져와 청자의 품질이 하락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는 窯場의 擴大와 生産의 增大, 消費의 擴散을 가져와 조선의 도자문화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康津에서 생산된 청자는 대부분 長興倉의 책임하에 선적되어 漕運路를 이용하여 開京으로 이송되어 소비되었다. 그리고 貢納品 뿐만 아니라 商品用 청자를 함께 생산하여 유통하였는데, 이는 靑瓷窯場과 海底遺蹟 등의 조사를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목차

요약
Ⅰ. 머리말
Ⅱ. 全羅道 地域의 陶瓷史的 背景
Ⅲ. 康津 靑瓷의 生産과 流通
Ⅳ. 맺음말
【要約】

참고문헌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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