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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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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25호
발행연도
2006.11
수록면
219 - 246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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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향촌사회 권력구조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재지사족 중심의 사회지배체제가 18세기 이후에는 크게 바뀌어 갔던 것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18세기 이후 사족지배체제는 더욱 강화되어 갔다는 견해도 있다. 아직까지는 어떤 견해가 확실히 옳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특정 시기 특정 지역에 대한 보다 많은 지역적 사례 연구의 필요성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본 논문은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나주의 청금안을 중심으로 재지사족의 실태와 동향 그리고 추이를 사례 연구로서 살펴보고자 하였다.
나주의 청금안을 살펴보면 1713년 『계사안』에서 1892년 『임진안』까지 입록되어 있는 유생의 총 수는 3,062명이다. 이 중 입록인원이 100명 이상인 주요 성씨는 순서대로 李, 金, 鄭, 羅, 柳, 林, 吳, 崔씨 등이다. 이들 여덟 성씨를 합한 인원이 2,509명으로 전체 입록인원의 81.93%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성씨는 전통적으로 나주를 지배해 왔던 주요 성씨들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결국 나주의 지배층을 이루고 있던 재지사족들이 청금 안에서도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청금유생으로 입록될 수 있는 자들은 나주에서 재지사족으로 상층 지배성관이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19세기 이후의 청금안 자료를 살펴보면 시대가 지날수록 다양한 성관과 인물이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향촌사회 지배 세력인 양반 사족의 외연이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향촌 사회 지배세력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나주를 본관으로 하는 토성 중심의 전통적 지배성관이 여전히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실질적으로 지배 사족의 위상은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한편으로 이러한 청금유생과 과거와의 관계를 살펴보면 사마시나 문과에 많은 합격자를 배출한 성관과 청금안에 많이 입록되어 있는 성관이 거의 일치하고 있다. 이는 과거 합격을 통해 사회적 지위를 공고히 했던 유력 지배 성관이 조선후기로 갈수록 청금안에 입록하여 향교를 장악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나주를 지배해 왔던 주요 재지사족의 위세와 비중은 결코 줄어들지도 크게 변화하지도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향촌 사회를 지배해 왔던 재지사족들은 시대가 흐르면서 향리층을 비롯한 향족들의 도전 속에서 보다 다양한 세력을 끌어들여 그 지배세력의 범위는 확대하였으나 그 주도권은 잃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목차

〈국문 초록〉
1. 머리말
2. 羅州 『靑衿案』 資料 檢討
3. 鄕校의 靑衿儒生과 在地士族
4. 靑衿儒生과 科擧
5. 맺음말
참고문헌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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