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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姜熺靜 (서강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미술사학회 미술사학연구(구 고고미술) 美術史學硏究 第266號
발행연도
2010.6
수록면
5 - 31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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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고대 불교조각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로 降魔觸地印 佛坐像의 기원과 전래에 관한 문제를 들 수 있다. 성도의 바로 그 순간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석가모니의 再現은 涅槃과 함께 불교의 精髓를 상징하는 핵심적인 주제이다. 그러면 〈항마〉서사에서 비롯된 촉지인 불좌상이 유행하기 이전 단계에는 석가모니의 성도를 어떻게 이해하고 표현했는가? 촉지인 불좌상이 조성되기 이전인 5-6세기 중국에서 석가모니의 항마장면을 묘사한 예는 막고굴과 운강 석굴 일부에 불과하다. 그러면 〈항마〉서사는 5-6세기 중국에서 어떤 식으로 이해되었고 그 의미는 무엇인가? 당시 중국인들이 성도에 큰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은 항마의 대상이 되는 ‘魔’라는 존재가 중국인들에게 생소했으리라고 추측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마’의 개념을 일반인들에게 이해시키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요구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다고 판단된다. 또한 『山海經』, 『淮南子』, 『世說新語』등을 통해 봤을 때, 전통적인 중국의 사고 체계에서 석가모니가 성도를 통한 寂滅로 불타가 되었다는 사실은 이해되기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보다는 오히려 보통 사람들과 다른 특별한 존재로서의 석가모니에 관한 인식이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추정하였다.
인간이 깨달음의 길로 가는 것을 방해하는 ‘魔’의 존재와 그에 해당하는 개념이 없었던 중국인들은 자신들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항마를 이해하고자 했다. 불타 석가모니는 ‘神’적 존재로 떠받들어졌지만 그에 대한 이해는 출생부터 남다른 인간으로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이는 한 역경전이 아니라 당시 남조의 지식인들이 썼던 글에서 잘 드러난다. 『牟子』와 『魏書』 「釋老志」에서 볼 수 있듯이 남북조 시대 漢族 지식인의 글은 탄생과 열반에 주안점을 두었으며, 성도와 관련되는 사건으로서의 ‘항마’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太安元年銘佛坐像과 皇興5年銘交脚像, 杜延和關阿娥合邑造像碑 등에는 마야부인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탄생하는 장면, 용이 갓 태어난 태자를 씻겨주는 장면이 조각되었다. 이처럼 불교 조각의 주제로 탄생과 구룡관정을 즐겨 묘사한 것은 석가모니의 생애에서 중국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사건이 바로 이 ‘탄생’이었음을 시사한다. 불교를 잘 이해하고 있었던 사람들도 석가모니가 깨달음에 이르게 된 과정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기보다는 자신들이 마땅히 도달해야 할 수행의 목표이자 댓가로서의 ‘성도’에 더 관심을 기울였던 것으로 보인다. 막고굴과 운강 석굴, 비상 등을 보면 성도를 항마와 결부시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항마의 시각적 형상화가 대중들에게 설득력이 별로 없다고 판단했으리라고 생각된다. ‘魔’와 ‘佛陀’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이 시기 중국에서 항마성도는 신앙대중들과 소통하기 쉽지 않았고, 미술로도 즐겨 표현되기 어려웠다.

목차

Ⅰ. 서언
Ⅱ. 석굴사원의〈항마〉서사와 ‘마’의 개념
Ⅲ. 단독상의 佛傳부조와 成道의 이해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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