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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연식 (목포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목간학회 목간과문자 목간과문자 제7호
발행연도
2011.6
수록면
203 - 222 (2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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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康津無爲寺에 있는 先覺大師碑의 내용을 새롭게 해석하고, 그것을 토대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弓裔의 행적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선각대사비에 전라도 지역을 원정한 후 선각대사를 泰封으로 모셔간 인물로 나오고 있는 大王은 지금까지 고려태조 王建으로 생각되었지만 비문의 전후 맥락을 고려할 때 태봉의 국왕이었던 弓裔로 확인된다. 후에 선각대사를 처형하는 大王과 동일 인물로 봐야하기 때문이다. 선각대사비에 의하면 大王 즉 궁예는 912년 8월 직접 군대를 이끌고 羅州와 武府(광주) 등 전라도 남부지역을 공략하였으며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러한 궁예의 親征사실은 형미
와 함께 雲居道膺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던 慶猷의 행적을 기록한 法鏡大師碑의 내용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당시 전라도 지역에서 수행하고 있던 경유 역시 이 지역에 원정 온 궁예를 따라 태봉의 수도로 이주하였던 것이다. 이들 자료로 볼 때 현재 『삼국사기』와 『고려사』등에서 왕건의 업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태봉의 전라도 남부지역 경략은 실제로는 궁예의 직접 지휘 하에 행해졌던 작전이었음을 알 수 있다. 후대에 태조 왕건의 업적을 선양하고 고려왕조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궁예의 역할이 지워졌던 것이다.
선각대사비와 법경대사비에 보이는 궁예의 선종 승려에 대한 우대 조치는 궁예의 불교정책에 대해서도 재검토하게 한다. 지금까지 궁예의 불교정책은 주로 미륵신앙이나 토착신앙 등의 신비적 신앙과 관련하여 이해되어왔지만 두 비문의 내용으로 볼 때 궁예는 선종에 대하여 적극적인 태도를 취한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고려 태조 왕건의 종교 정책의 특징이라고 생각된 선종 승려에 대한 적극적인 포섭 정책도 실제로는 전임자인 궁예의 정책을 계승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된다. 선각대사비는 나말여초 시기의 불교사는 물론 정치적 동향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서 이미 많은 연구들에 활용되어 왔다. 하지만 해석상의 작은 착각으로 인해서 자료가 담고 있는 정보가 온전히 파악되지 못하였다. 이 자료는 후대의 사서에 말살되어 버린 궁예의 행적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재평가될 필요가 있으며, 보다 면밀히 새롭게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無爲寺先覺大師碑文의 재해석
Ⅲ. 泰封의 전라도 남부지역 경략과 弓裔
Ⅳ. 弓裔의 불교정책에 대한 재검토
Ⅴ.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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