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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류대영 (한동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한국기독교와 역사 한국기독교와 역사 제35호
발행연도
2011.9
수록면
79 - 108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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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대한복음교회 초대 감독인 최태용은 기독교인이 된 후 전도자, 교회개혁가, 신학자, 목회자, 사회운동가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그의 신학 가운데서도 교회론은 그의 신학적 궤적을 꿰뚫는 주제라고 할 수 있다.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던 최태용은 우치무라 간조의 영향을 받고 무교회주의자가 되었다. 무교회주의의 영향 아래에서 그는 교회의 본질을 제도가 아니라 신앙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우치무라와 달리 영육이원론적 관점과 적극적인 교회 개혁의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스스로 교회개혁을 위한 시대의 사도로 생각한 그는 자신의 신학을 “새 복음”으로 여기며 잡지와 집회를 통해 설파했다. 그러나 제도교회와 교회전통을 무시하는 듯한 그의 신학은 기존 교회의 반발을 불러왔다. 교회 없이 교회와 투쟁하는 데 한계를 느낀 최태용은 무교회주의를 버리고 제도로서의 교회를 받아들인다. 그가 설립한 기독교조선복음교회는 제도교회에서 출발한 그의 교회론이 무교회주의를 거쳐 다시 제도교회로 돌아왔음을 보여주었다. 복음교회를 설립한 후 최태용은 “보이지 않는 교회”를 의심하며 제도교회를 신앙의 중심으로 보았다. 복음교회는 그의 진보적 신학과 과격한 성품을 제어하여 그가 전통적 교회의 범주를 떠나지 않도록 해주었다.

목차

1. 머리말
2. 무교회주의에서 비교회주의로
3. “조선인 자신의 교회”론
4. 맺음말
참고문헌
한글초록
Abstract

참고문헌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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