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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종복 (성균관대)
저널정보
고구려발해학회 고구려발해연구 高句麗渤海硏究 第41輯
발행연도
2011.11
수록면
185 - 204 (2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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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사서가 현전하는 않는 상황에서 발해의 역사는 그와 교섭하던 당이나 일본측 기록을 통해 복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러한 기록들은 당과 일본의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발해를 수동적이고 종속적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측 사료에 입각한 현재 일본학계의 선행 연구 역시 일본은 발해를 蕃國(조공국)으로 간주하였으며, 이로 인한 양국의 외교적 갈등에 대해 발해는 경제적 목적을 위해 일본의 요구에 부응하였다고 파악하고 있다.
이 글은 발해와 일본의 외교적 갈등을 발해의 입장에서 파악하기 위해, 8세기 발해·일본간의 사신 왕래와 관련된 사항들, 즉 발해 국서와 사신의 도착지 및 이용 항로, 사신 인원 등에 대한 일본의 불만을 구체적으로 검토하였다.
여기서는 일본이 발해를 번국으로 간주하는 현실적 근거로서 발해사신이 겨울철 북서계절풍을 이용하여 정월에 입경한 후 賀正의례에 참석한 점에 주목하였다. 따라서 발해는 일본과의 대등관계를 견지하면서 외교적 갈등을 피하기 위해 9세기에 사신 파견 시점을 의도적으로 늦추어 일본의 하정 의례에 불참하였던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8세기 발해와 일본의 사신 왕래 상황
Ⅲ. 渤海國書에 대한 일본의 불만
Ⅳ. 도착지와 이용 항로
Ⅴ. 사신 인원
Ⅵ.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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