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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용흠 (연세대)
저널정보
한국고전번역원 민족문화 민족문화 제37집
발행연도
2011.6
수록면
7 - 37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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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에는 兩亂으로 인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사상적 모색이 이루어졌다. 당시의 지배적인 정치사상은 朱子學이었으므로, 그러한 모색은 결국 주자학에 대한 찬반으로 나뉘어졌으며, 이것은 정치적 갈등으로 이어졌다. 당시의 사상적 정치적 갈등은 주자학에 대항하는 實學과 이를 정 치적으로 구현하려고 한 蕩平論의 형성으로 귀결되었으며, 이후 실학과 주자학의 사상적 대립을 배경으로 하여 탕평론과 반탕평론의 대립이 전개되었다.
尹拯은 尹宣擧를 이어서 宋時烈의 학문과 태도를 비판하고 ‘實心 實學’을 주장하였는데, 이것은 ‘조선후기 실학’ 그 자체는 아니었지만, 주자학에서 실학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또한 事勢論에 의해 윤선거의 강화도에서의 행적을 옹호한 것은 主和論의 논리를 긍정한 것이었으며, 그가 朴世采와 함께 탕평론을 주장한 것은 윤선거의 變通論과 破朋黨論을 계승·발전시킨 것 이었다. 이것은 윤증 가문이 당시의 시대적 한계였던 封建性을 극복하고 보수에서 진보로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윤증과 송시열의 갈등에서 시작된 懷尼是非는 18세기 영조·정조대에는 탕평책과 탕평정치의 성패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었다. 그것은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었으며, 당시의 시대적 과제를 둘러싸고 전개된 新舊 思想의 갈등을 반영한 것이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조선후기 사상계의 분화와 탕평론
3. 명재 윤증 가문의 대응과 변통론
4. 윤증과 송시열의 갈등과 탕평론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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