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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한금실 (제주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역사민속학회 역사민속학 역사민속학회 제24호
발행연도
2007.6
수록면
311 - 343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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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940년대 전후 제주불교에 혁신운동의 바람을 일으켰던 이세진에 대한 연구이다. 이세진은 1910년 일본의 식민지가 되던 해에 태어나 1949년에 생을 마감하였는데, 그가 남긴 활동의 업적은 40년이란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근대 제주불교가 어떠한 모습으로 굴절되어 갔는지 매우 상징적으로 나타내주고 있어 근현대 제주불교를 고찰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 특히 그의 주요 업적 중 근대 제주불교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濟州講院의 승가교육활동과, 서관음사에서 승려와 마을주민들이 합심하여 공동으로 추진했던 제주불교혁신운동 등은 제주불교사뿐만 아니라 한국불교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지니는 활동이었다.
이러한 이세진의 혁신사상의 바탕에는 유년시절부터 출가 이후 그의 행적에서 지속적으로 확인되었던 근대 禪農불교사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선농불교는 일반 민중과 함께 생활 속의 불교를 지향하며 평등한 생산구조 속에서 노동을 통한 수행정신을 고취시켜 僧?俗이 함께 문제의 해법을 찾아나가는 불교개혁운동이었다. 이세진은 이 선농불교사상에 한국불교의 정신을 잇는 전통강원 교육을 연계시켜 한 사찰의 도량 안에서 승가교육기관인 강원과 생산체제의 틀을 갖춘 공장을 함께 설립 운영함으로써 기존 불교계 내에서는 찾을 수 없는 매우 독특한 형태의 불교혁신운동을 보여주었던것이다.
불교혁신운동의 실천장이었던 서관음사는 1949년 1월 도평리 집단학살사건 때 토벌대에 의해 전소되었으며, 뒤이어 7월 경찰에 의해 총살당한 이세진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한 승려가 서관음사에 모셨던 불상을 도평리 인근 땅속에 묻고 홀연히 떠났다고 한다. 이로써 이세진의 제주불교혁신운동은 1940년대 역사의 장벽 앞에 부딪혀 근현대 제주불교의 숱한 흔적들과 함께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세진의 제주불교혁신운동에 대한 본 연구는 현 제주불교의 정체성, 한국불교사와의 시대적 영향과 충돌, 한국사회 변동기에 불교계의 구체적 동향을 밝히는 기초 자료로써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며, 현재 실타래처럼 엉켜있는 제주불교의 제반 문제와 향후 방향을 결정할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목차

요약
1. 머리말
2. 이세진의 생애
3. 1939~1941년 제주승가교육활동
4. 1942년 제주불교혁신운동
5. 제주 4?3사건과 혁신운동의 좌절
6. 맺음말
참고문헌
부록
Abstract

참고문헌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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