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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광재 (국사편찬위원회)
저널정보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한국독립운동사연구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40집
발행연도
2011.12
수록면
221 - 264 (4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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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이래 한국의 대표적인 특산품인 고려인삼은 일제시기 해외한인들의 생계와 활동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존재였다. 고려인삼은 중국에서 靈藥, 不老草 등으로 알려져 대단한 환영을 받았다. 인삼은 조선 사람이 팔아야 진짜 인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때문에 큰 자본이나 특별한 기술이 없던 한인들은 고려인삼 판매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일제시기 중국, 특히 상해에 이주한 한인들은 생계를 위해 인삼 상점을 차리거나 혹은 인삼 행상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발견된다. 부피가 작아 휴대하기 편리한 인삼은 단순한 토산품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화폐나 마찬가지였다. 그러기에 상해에 오는 한인 가운데 소지금이 넉넉지 않은 이들은 으레 인삼 몇 근을 들고 와서 현지에서 판매하여 여비나 생활비, 학비로 충당하였다.
그렇지만 인삼 영업이 늘 잘 되었던 것은 아니다. 중국에서 일본상품 배척운동이 일어날 때마다 인삼이 일본 물건으로 오인되어 배척을 받았다. 인삼 행상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돈을 많이 버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하고 호구하는데 만족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또한 오지를 전전하는 관계로 현지인으로부터 핍박을 당하거나 쫓겨나는 경우도 있었다. 이와 같이 일제시기 해외, 특히 재중 한인들의 애환이 서린 것이 바로 인삼이었다.
요컨대 고려인삼은 일제시기 중국 상해 한인들의 중요한 생계 수단 가운데 하나였다. 고려인삼 판매자금의 일부는 독립운동진영으로도 흘러들어갔을 것으로 말해지고 있다. 해송양행이나 김문공사, 원창공사의 경우와 같이, 인상 상점은 단순한 영업점이 아니라 한인사회의 연락처나 독립운동의 거점 역할을 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 전역, 남양, 미주 등지를 전전했던 인삼 행상들은 해외 한인사회를 연결하고 각지의 소식을 전달해주는 역할도 했다. 이와 같이 인삼은 재중 한인사회의 경제적 기반 형성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

목차

1. 머리말
2. 재중 한인과 고려인삼
3. 상해의 한인 고려인삼 상점
4. 상해의 한인 고려인삼 행상
4.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영문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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