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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일수 (계명대학교)
저널정보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한국학논집 한국학논집 제45집
발행연도
2011.12
수록면
261 - 285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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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달성친목회는 한말 계몽운동이 활발했던 대구지역을 배경으로 경상도 일대 나아가 국외 독립운동 세력과 연계하여 민족운동을 전개한 비밀결사였다. 달성친목회는 대한협회 대구지회의 청년조직으로서 성격을 가진 계몽운동 단체였으나 한일병합으로 인해 활동이 정지되었다. 그 뒤 1913년 1 월 안일암 시회에서 새로운 구성원이 참여한 가운데 달성친목회는 재건되었다 . 재건 달성친목회는 대종교의 이념을 수용하면서 민족독립을 위한 비밀결사로 재조직되었다.
달성친목회는 강유원간친회와 함께 대구를 중심으로 경상도 일대까지 영향력을 넓혀갔다. 이때 달성친목회는 대구권총사건이 발생하자 태궁상점을 기반으로 계몽운동노선을 견지하였다. 또한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독립운동 자금 모집 운동과 독립청원서 운동에 참여하는 등의 실천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재건 달성친목회의 민족운동은 관련자의 밀고에 의해 일제의 탄압을 받고 좌절되었다. 이 과정에서 일제 사법당국은 달성친목회를 국권회복단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경찰은 조선을 덧붙여 조선국권회복단이라 하였다.
따라서 달성친목회는 한말 계몽운동 시기에 결성된 이래로 계몽운동의 노선에서 독립을 전망하고 실천한 비밀결사였다. 그리고 이 운동은 1920년대 이후 대구지역에서 문화운동과 자본증식운동을 내용으로 하는 실력양성운동 노선으로 이어졌다.

목차

1. 머리말
2. 달성친목회의 결성과 재건
3. 달성친목회의 강제 해산과 그 이후
4. 3·1운동기 독립운동
5.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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