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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오인택 (부산교육대학교)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81집
발행연도
2011.12
수록면
29 - 61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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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남아있는 조선후기 양안은 대부분 1720년에 작성된 경자양안과 그 이후의 양안이다. 이 때문에 1624년에 작성된 갑술양안의 성격은 연구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상황에서 갑술양안을 바탕으로 하여 1681년에 내수사가 작성한 『남해현용동궁양안』은 중요한 자료이다. 간접적으로 갑술양안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1681년의 양안과 경자양안을 비교하여 알게 된 갑술양안의 특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갑술양안이 員이라는 지역 단위로 각 필지의 지번을 결정하고, 5결 단위로 1개의 자호를 부여하였다는 점이다. 이 점은 경자양안이 천자문의 자호 단위로 각 필지의 지번을 결정한 것과 다르다. 이 점은 갑술양안이 경자양안보다 훨씬 비효율적인 체계였음을 말한다.
또 하나의 갑술양안 특징은 소유주를 기재하는 기주난에 時作으로 불리는 경작인 이름을 기재하였다는 점이다. 경자양안의 기주난에는 소유주와 경작인을 명확히 구별하여 기재하였다. 이러한 차이점이 발생한 이유는 時作이 단순한 경작인이 아니라 개간을 통하여 경작권을 가졌기 때문이다. 갑술양안에서 실제의 소유자였던 정부기관은 자신 대신에 경작권자를 등록하였던 것이다. 반면 경자양안 에서는 정부기관이 자신을 소유주로 등록하고 별도로 時作을 표기하였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토지소유권 분쟁의 증가에서 찾을 수 있다. 즉 갑술양안이 작성된 이후에 토지소유권 분쟁에서 갑술양안의 기주난에 등록된 이름을 소유권 주장의 근거로 사용하였기 때문이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남해현용동궁양안』(1680, 1681)의 검토
Ⅲ. 『남해현용동궁양안』에 나타난 갑술양안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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