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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우인수 (경북대학교)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81집
발행연도
2011.12
수록면
197 - 222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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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분당의 과정을 남북 갈등의 조짐, 갈등의 심화로 인한 분당, 대립의 고착이라는 세 단계를 설정하여 각 단계별로 분석하면서 파악하였다. 남북분당기에 발생한 사안에 관한 서로 다른 견해에 대해 그 의미를 검토하고 음미하는 방법을 통해 남북분당 과정을 재구성하면서 종합하는데 의미를 두었다. 특히 단계별 남북분당의 과정에서 보인 정인홍의 역할에 주목하여 이를 통해 그의 영향과 위상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먼저 동인 내부의 남북 갈등의 조짐이 있었던 시기는 선조 13년으로부터 선조 22년 기축옥사가 일어나기 전까지의 기간으로 설정하였다. 이 시기 갈등의 조짐이 된 사건들에는 여러 사람이 상호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이발과 우성전, 정인홍과 우성전, 이경중과 정여립, 정인홍과 이경중을 둘러싼 여러 가지 갈등이 그러한 예였다. 하지만 이러한 갈등은 분당으로까지 치달을 정도로 심각한 단계는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이 시기의 정인홍도 다소 경직된 면은 있었지만 공무를 강직하게 수행한다는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는 활동을 한 시기로 볼 수 있다.
선조 22년의 기축옥사는 동인을 남북으로 분당시키는 지경으로까지 치닫게 하였다. 정여립의 모역사건을 계기로 만연된 옥사는 동인과 서인 뿐아니라 선조까지 깊숙이 개입하면서 후일 북인으로 분류되는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처형되는 참혹한 화로 확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화를 주로 입은 측의 인사들은 옥사를 만연한 상대당인 서인은 물론이거니와 이를 적극적으로 구원하지 않고 관망하는 자세를 보였던 같은 동인의 일부에 대해서도 점차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 정인홍과 류성룡, 이산해와 류성룡, 이경전과 정경세 간의 갈등으로 심화되면서 동인이 결국 남인과 북인으로 나뉘게 되었다.
임진왜란이 거의 극복되어갈 무렵인 선조 31년 북인들이 대대적으로 남인의 우두머리 영의정 류성룡을 집중 공격하여 실각시키면서 대립 양상은 절정에 달하게 되었다. 북인들은 명에 보내는 변무 사행에 류성룡이 자청하지 않은 점을 거론하여 체직을 시킨 다음 남북분당의 책임, 임난 때의 주화론 주창 등의 책임을 집중 공격하여 관작을 삭탈케 하는데 성공하였다. 그 외의 남인 인사들이 함께 조정에서 몰려났음은 물론이었으며, 임난 중 의병 활동을 하다가 과로사한 우성전의 관작까지 삭탈시켰다. 정인홍은 이러한 남인의 공격에 직접 나서거나 또는 문인을 통하여 공격하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일익을 담당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남북 갈등의 조짐과 정인홍
Ⅲ. 기축옥사와 남북 분당
Ⅳ. 남북 대립의 고착과 정인홍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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