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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사상과 문화연구원 장신논단 장신논단 제39집
발행연도
2010.12
수록면
353 - 378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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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해방 직후 선교부 재건을 위해 교단 선교부들이 어떤 연합기관을 조직하고 활동했는가를 밝히는 글이다. ‘북미해외선교부회의’ 산하 ‘한국위원회’는 일제 패망 이전부터 선교부 재건을 준비했으며, 해방 후 미군정의 요청으로 개신교 선교사의 모임인 ‘10인위원회’를 선발대로 파송했다.
이들은 내한과 더불어 전쟁 기간 황폐해진 선교부 현장을 조사하고 본국에 보고하며 군정과 협조해 빠른 선교사 내한을 위해 힘썼다. 초기 선교부 내한을 위해 ‘서울외국인학교’의 재건과 구호활동이 필요했으며, 이를 위해 ‘기독교세계봉사회’가 1946년 5월 발족하면서 본격적인 구호책임을 맡게 되었다.
10인위원회는 1948년에 ‘선교부대표자위원회’로 확대 발전하였다. 이 위원회는 기존의 10인위원회의 역할을 인수함과 동시에 보다 폭 넓게 선교부 연합사업과 선교사 복지를 도모하는 단체였다. 내한 선교부가 연합하여 농장, 고아원, 병원, 공장을 세우는 ‘대전프로젝트’를 추진했고, 대천해수욕장에 선교사휴양소를 건립하기도 했다. 대전프로젝트는 연합기관의 재건과 관련해서 북장로교회와 남장로교회 선교부의 갈등 그리고 기독교세계봉사회를 둘러싼 북장로교회와 감리교회 선교부와 갈등으로 인해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1947년 7월 북장로교 해외선교부의 실사단이 내한한 이후에 장로교 선교부의 지도부에 해당하는 연합기관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래서 출범한 것이 ‘교회와 선교합동위원회’였다. 남장로교회선교부가 참가하지 않았지만 이 위원회는 캐나다 연합교회와 호주장로교회도 참여했으며, 1949년 출범 이전부터 내한 장로교 선교지부와 예장총회의 연합기구로 선교와 교회 재건을 조정하는 역할을 했다.

목차

국문 초록
Ⅰ. 서론
Ⅱ. 선교부 연합조직과 역할
Ⅲ.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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