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동욱 (서울대)
저널정보
한국양명학회 양명학 陽明學 제29호
발행연도
2011.8
수록면
5 - 39 (35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논문의 목적은 육구연과 도학파(道學派)의 관계를 조명하는 것이며, 또 그 과정에서 육구연의 학문 연원 문제와 도학파에 대한 육구연의 태도 및 주륙이동(朱陸異同)에 대한 기존의 논란을 재검토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필자는 육구령(陸九齡)에 주목하였다. 육구령이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육구연은 도학파를 이단(異端)이라고 비판하면서도 도학파의 일부 학문적 특징은 공유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면모가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 나타나게 되었는지 설명하는 데 육구령의 역할을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둘째, 아호사(鵝湖寺) 모임 이후에 육구연이 아호사에서의 자기 입장을 바꾸었다는 주장의 중요한 근거는 아호사 모임 이후 육구령의 행보라는 점과 관련된다. 당시의 주희부터 명청(明淸) 시기까지주륙(朱陸)의 의견이 결국 일치하게 되었다는 견해의 주된 근거는 육구령이었다. 이 때문에 육구령의 학문 역정(歷程)을 분석하는 것은 위의 두 가지 문제에 대한 객관적인 접근에 매우 중요하다.
육구령은, 주희?장식?여조겸처럼, 도학파에 대한 정체성이 확고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10대 후반에 스스로 도학파의 학문에 관심을 가졌고, 20대에는 허흔(許?)을 통해 도학파의 정치적 견해도 수용한다. 또 허흔의 권유로 당시 도학파의 계승자로 자처하던 호상학(湖湘學)과의 교류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 육구령은 형제들과의 강학을 통해 자득(自得)한 것도 있었다. 육구령의 학문적 갈등은, 그가 지향했던 도학파의 학문적 방향과 자기 형제들이 자득한 학문의 방향이 다르다는 점에서 출발했고, 동생 육구연과 주희의 학문적 대립은 이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었다.
육구연은 학문적인 성장 과정에서 형제들 중 특히 육구령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육구령은 자신이 관심을 가졌던 도학파의 학문적 내용을 가지고 성장기의 육구연과 토론을 했으며, 이 토론은 육구연의 학문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육구연은 성장하면서 점차 자신과 형제들에 의한 자득(自得)을 강조하고, 자신들의 자득과 대비되는 도학파의 학문을 비판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심지어는 도학파와 자득 사이에서 갈등하는 육구령을 비판하기도 한다. 육구연의 육구령에 대한 비판과 학문적 결별은, 곧 육구연이 도학파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목차

요약문
I. 들어서며
II. 정호-임광조 학맥을 학문 연원으로 볼 때의 문제점
III. 육구령과의 관계가 왜 중요한가?
IV. 육구령은 도학파인가?
V. 육구연의 자득(自得) 중시와 육구령과의 결별
VI. 이정(二程)에 대한 육구연의 태도
VII. 마치며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3-151-001548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