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문석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역사민속학회 역사민속학 역사민속학회 제36호
발행연도
2011.7
수록면
83 - 124 (42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 연구는 범종에 표현된 범자를 중심으로 등장배경 및 범자체와 진언의 의미를 시기적인 양상과 변천을 통해 살펴 본 논문이다. 고려시대 범종의 범자는 육자대명왕진언과 다양한 다라니 및 만다라에 영향을 받았지만 크게 성행하지 못하였으며, 상징적인 의미보다 문양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조선시대는 범종에 범자가 널리 표현되었는데, 이점은 조선전기 왕실의 진언신앙에 대한 기록을 통해서 파악할 수 있었다.
15세기에는 〈낙산사종(1469년)〉과 〈봉선사종(1469년)〉 등의 왕실발원종에는 관음보살신앙을 중심으로 육자대명왕진언과 파지옥진언의 범자가 표현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왕실발원종만의 독특한 실담문자 범자체와 제작기법을 통해 〈수종사종(1469년)〉이나 〈유점사출토종〉 등이 왕실 내 범종 제작기관인 주종소에서 제작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을 할 수 있었다.
16세기에 들어서는 승장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범자 도안이 등장하는 동시에 단순히 도식화되는 경향 또한 복합적으로 나타났다.
조선후기에는 실담문자를 중심으로 범자가 표현되었다. 승장들의 경우 양천목ㆍ천보계는 왕실발원종을 계승한 실담문자 범자를 사용하였으며 란차문자와 같은 새로운 범자도 도입하여 표현하였다. 이후 죽창ㆍ정우계는 상대 문양으로 범자를 사용하고 특징적인 한자진언을 표현하는 경향이 지속되었다. 이후 사인계에 이르러 내재적인 전통성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을 시도하였는데, 이는 18세기 사인계까지 유지되었다.
사장들의 경우 17세기 사장들은 계열별로 독특한 법자 표현을 시도되었다. 그렇지만 김상립ㆍ김성원 김씨일가계를 기점으로 18세기 사장들의 범지는 ‘옴’자만 표기하는 방식으로 점차 도식화 되었다. 이는 18세기 중반 이후 승장들의 작품에서 보이는 경향으로, 범자의 도식화 경향은 사장들이 승장보다 이른 시기에 진행되었다.
조선시대 범종의 법자는 고려시대와는 차별적으로 조선전기에 신봉되었던 진언신앙과 교리적 상징성을 바탕으로 육자대명왕진언과 파지옥진언이 범자로 표현되었다. 범자의 양상과 변천에서 조선전기는 발원계층별로 다양한 범자의 표현이 확인되고, 조선후기는 주종장의 계열별로 다양한 범자체와 제작기법이 시도되었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 범종에 표현된 범자는 고려시대 보다 상징성이나 양식적인 면에서 주 문양으로서 범종에 표현되었음을 알 수 있어 그 가치가 높다.

목차

[국문요약]
1. 머리말
2. 조선전기 王室의 眞言信仰
3. 조선시대 梵鐘 梵字文의 樣相과 變遷
4.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39)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3-380-001695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