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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수희 (영남대학교)
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38집
발행연도
2011.4
수록면
197 - 229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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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인들이 울릉도에 도항하여 경제활동을 한 사실은 100여 년 이상 지속되어 온 것으로, 노동요나 구전되는 이야기를 통해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거문도와 울릉도를 왕래하며 교류한 사실을 증명할 구체적인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거문도에는 ‘울릉도로 나는 간다’라는 노동요와 울릉도의 나무로 만든 생활용품이 남아있는 것이 고작이다. 또한 이 두 지역의 관계를 알 수 있는 인적 교류도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것은 아마도 촌락 단위로 도항한 거문도인들의 강한 결집력 때문인 듯하다. 전라도인들이 울릉도로 건너가서 경제활동을 한 사실은 1882년 검찰사 이규원의 보고서를 통해 알려졌다. 전라도인들이 울릉도에 건너가서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고 전복과 미역을 채취하고 있었다. 이들은 독도가 보이는 울릉도에서 매년 계절적 어업에 종사하였으며, 울릉도?독도를 생산 공간으로 이용하였다. 그리고 울릉도 개칙령이 반포되자, 울릉도를 개척하는 데에 큰 공적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조선 침략 정책과 이에 대항하여 조선 정부가 시행한 여러 가지 법적 규제로 결국은 배제되고 말았다.
이러한 측면에서 거문도인들이 울릉도에 도항하여 어로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은 어업공동체의 완전한 해체뿐만 아니라, 울릉도 역사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일본 연구자들은 1903년경 일본인으로부터 어 업을 전수받고 조선인들이 독도를 인지하였다는 주장은 최소한 100여 년 전부터 울릉도로 도항하여 벌인 어로활동을 배제한 연구결과에 근거한 것이다. 앞으로 독도 영유권과 관련하여 울릉도를 생활터전으로 삼았던 거문도, 초도, 손죽도 어민들의 울릉도 도항과 독도나무를 베어 온 이들의 어로 활동에 대한 연구가 시급하다고 본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조선시대 거문도인들의 울릉도 어로 활동 배경
3. 울릉도 어장 이용 실태
4. 개척령 이후 울릉도어장과의 단절
5. 맺음말
ABSTRACT

참고문헌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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