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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영실 (한국학중앙연구원)
저널정보
북한대학원대학교 현대북한연구 현대북한연구 제14권 제3호
발행연도
2011.12
수록면
43 - 80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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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0월 19일 중국인민지원군이 압록강을 도하하였다. 한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은 이제 남북 간의 내전을 넘어서 본격적인 국제전의 성격으로 변화되었다. 중국의 6?25전쟁 참전 결정은 단순히 사회주의 국가였던 북한의 요청으로 그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으며, 이는 북한과 중국의 역사적 관계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중국의 정규군이었던 중국인민지원군은 한반도에 지원(志愿)의 형식으로 파견되었고, 위기에 처해 있던 북한군을 도왔다. 그러나 중국인민지원군이 전쟁에 참전한 후 작전지휘권의 불일치로 인해 사고가 발생하였고, 북한과 중국은 1950년 12월 연합사령부를 창설하였다. 그리고 스탈린의 지지로 연합사령부의 주도권은 중국이 갖게 되었으며, 이후 철도관리권 역시 중국 측에 귀속되었다. 1951년 7월 10일 정전회담이 시작되면서 회담 의제 문제로 북한과 중국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회담 초기 북한은 정전협정을 체결하는 데 있어 북한의 위신이 손상되지 않는 한에서 처리되기를 희망하였지만, 회담이 지연되면서 조기 정전을 원하였다. 그러나 정전회담 의제 중제4항인 포로 문제 논의가 시작되면서 중국의 전원 송환 원칙 고수로 정전회담은 지연되었고, 북한과 중국 사이의 갈등은 가속화되었다. 결국 1953년 정전협정이 이루어진 계기는 스탈린의 사망이었다. 6?25전쟁은 북한과 중국이 진행하였지만, 스탈린이 북한의 전쟁 도발을 승인함으로써 시작되었고, 정전협정 체결 역시 스탈린의 사망으로 소련정부의 입장이 변경되어 이루어진 것이다.

목차

1. 서론
2. 중국의 6?25전쟁 참전과 전쟁의 주도권 장악 과정
3. 정전회담 시작 전의 각국의 입장
4. 정전회담 중 북한?중국의 대립과 정전협정 체결 과정
5.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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