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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송지예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동양정치사상사 제11권 제1호
발행연도
2012.3
수록면
179 - 209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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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919년 2ㆍ8운동 당시 작성되었던 『민족대회 소집청원서』의 내용과 제출 방식에 주목하여, 2ㆍ8 독립운동 실행과정에서 드러나는 도쿄 유학생들의 국제정치 인식을 살핀다. 도쿄 유학생들은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의 대통령이 아닌 일본 정부와 의원들에게 청원서를 제출하였으며, 그 내용은 ‘독립’ 청원이 아니라 ‘민족대회소집’ 청원이었다. 이러한 특징은 2ㆍ8 독립운동 참여자들이 스스로 증언하고 있듯이, 독립운동 실행방식을 결정하면서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제시한 14개 조항에 근거했기 때문이다.
‘민족대회’를 통해 독립의지를 표시하려는 시도는 14개 조항 중 식민지 관련 조항인 제5항, 즉 “모든 식민지의 요구는 공정하게 처리되어야 하며, 그 식민지 주민들의 이익과 그들을 다스리는 정부의 입장이 동등하게 고려되어야 한다”에서 규정하는 절차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또한 『민족대회소집청원서』는 일본 제국주의 통치하에서 한국인은 발전은커녕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있음을 여러 사례를 들어 논증하고 있는데, 이 역시 제5항에서 기준으로 삼고 있는 이익(interests)의 측면과 맞물린다. 즉, 한반도 내에서 한국인과 일본인의 이익은 배치될 수밖에 없으며, 피지배 민족인 한국인은 일방적으로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독립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2ㆍ8 독립운동 참여자들이 윌슨의 14개 조항을 근거로 한국의 독립을 주장했다고 해서 그들의 시각이 순진했다거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당시 도쿄 유학생학우회 주최 웅변회에서의 연설이나 그들이 발간하고 있었던 『學之光』에 실린 글을 보면 윌슨의 ‘민족자결’이 한국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2ㆍ8 독립운동은 윌슨의 14개 조항이 한국에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번지고 있었던 ‘정의 인도’의 시대 분위기에 힘입어 독립을 이루고자 했던 도쿄 유학생들의 고민 속에서 탄생했던 것이다. 즉 2ㆍ8 운동은 14개조의 적용 범위를 확장시켜 해석함으로써 독립을 뒷받침하는 근거로서 원용하려는 시도였다. 비록 ‘민족자결’이 서구의 국제정치사에서는 ‘이상주의’ 혹은 ‘국제주의’의 흐름으로 이해되어지지만, 당시 식민지 한국에서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목차

논문요약
Ⅰ. 들어가며
Ⅱ. 도쿄 유학생들의 2ㆍ8 독립운동 준비와 실행
Ⅲ. 2ㆍ8 『민족대회소집청원서』제출의 의미
Ⅳ. 윌슨의 “Self-determination”과 한국인들의 변용
Ⅴ. 나오며
〈참고문헌〉

참고문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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