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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천혜숙 (안동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역사민속학회 역사민속학 역사민속학회 제38호
발행연도
2012.3
수록면
185 - 222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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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 수난에 관한 청운마을 사람들의 구술자료는 중앙사에서 소외된 지역사, 아래로부터의 역사인 민중사, 그리고 기록되지 못하고 기억으로 써 온 구술사의 전형적 사례가 될 수 있다. 특히 남신당과 여신당의 이전 및 훼손은 부재지주와 일제가 개입된 사건으로서 마을사람들에게 깊은 상흔을 남겼다. 남당에 이어 여당에서도 같은 사건이 반복되자 마을사람들은 똥물까지 동원하여 대항하였지만, 권세와 부를 지닌 한 가문을 한 마을이 당해 낼 수 없었다. 이 사건은 비록 문자로 기록되지 못했지만, 마을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롯이 남았고, 마을 내에서 세대를 이어가며 구술로 재현되어 왔다. 따라서 이 구술자료는 동신당 수난 사건에 관한 마을민의 항거에 관한 집단기억의 역사에 다름아니다.
조선조 이래 벌열 문중으로서 특히 구한말- 일제 초기에 치부의 전성기를 누린 만석꾼 청송 심씨 가문과, 주민의 상당수가 심씨 가문과 지주-소작 관계에 있었던 청운마을이 대립된 이 사건의 맥락에는 관민(官民)의 정치적 갈등, 반상(班常)의 사회적 갈등, 빈부(貧富)의 경제적 갈등이 내재되어 있다. 적어도 일제시대까지 이 마을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심부자 댁을 당할 수 없는 구조적 열세에 있었다. 마을의 남당이 옮겨지고, 여당은 심부자 댁의 분묘로 가려지게 된 두 사건의 귀결이 그것을 말해 준다.
구술이 한 목소리로 강조하는 것은 그러한 구조적 열세이다. 특히 분뇨를 통한 항거와 가시성 쌓기를 통한 징벌의 대목에 기억이 집중되고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과연 구술사는 의미를 지향하는 역사임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민중적 기억의 재현에서 확인된 또 다른 양상은 그들이 개개의 사실보다는 구조에 착목한다는 점이다. 마을사람들은 70여 년의 간격이 있는 두 사건을 마치 동시대에 일어난 것처럼 구술한다. 신당의 묘역화를 매개로 지주가문과 소작농민층이 대치한 두 사건의 동질성이 이러한 기억의 구조화를 추동했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서 사건에 대한 구술은 계기적인 연대기가 아니라 가역적인 서사로서의 원형성을 획득한다. 한편 19세기 중엽에 일어난 남당 사건의 경우에는 ‘새’의 상징과 설화적 전통을 활용하여 빼앗긴 남당 자리의 지기(地氣)를 무화하고, 새로 이건(移建)한 자리를 오히려 성소공간으로 바꾸는 ‘신화 만들기’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기억의 재현 방식은 현실에서 패배한 사건을 결코 비극적인 서사로 종결하지 않음으로써 대항기억, 또는 대항담론의 위상을 확보한다. 그 외에도 마을사람들의 일상언어 가운데 ‘치매(치마)양반’의 비유나 ‘재채기는 심씨네 가서 해라’ 등의 속담적 표현은 생활 속에서 진행된 기억의 사회적 생산으로 주목될 만한 것이다.

목차

국문요약
1. 머리말
2. 청운마을과 동신당 수난의 마을사
3. 동신당 수난 사건의 사실적 맥락
4. 민중적 기억의 재현과 담론 특성
5. 마무리
참고문헌

참고문헌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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