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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저널정보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한국학논집 한국학논집 제46집
발행연도
2012.3
수록면
49 - 83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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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4월 관기제도가 실질적으로 폐지되자 경상감영과 대구부 관청에 예속되어 있던 교방의 관기들이 사회로 진출하게 되었다. 사회로 진출한 기생들의 모임이 바로 1910년 5월에 결성된 대구기생조합이다. 이후 일본인들이 중심이 되어 자금을 투자하면서 1922년 6월 10일에 주식회사 대구권번이 조직되었다. 대구권번은 25명의 기생으로 중구 향촌동 13번지에서 속반원삼평(粟飯原三平)을 대표로 20명의 주주가 1,000주로 시작하였다. 그리고 달성권번은 1927년 1월 6일에 관기 출신의 염롱산廉?山을 권번장으로, 한국인들에 의해 자본금 6,000원으로 중구 상서동 20번지(현 만경관 뒤 春鶯閣 자리 포함)에서 합자회사로 설립되었다.
이렇듯 일제강점기 대구지역에는 세 곳의 기생단체가 결성되어 활동을 하였다. 이들 단체에 소속된 기생들의 활동으로 인하여 대구지역 전통음악의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들 단체에 소속된 기생들은 대구시내 요정에 출입하여 노래·춤·악기 등 기예를 뽐내면서 생활하였다. 한편 1922년 6월 대구권번이 대구기생조합 이후에 설립됐으나 당시 대구권번의 대외적인 활동기사는 몇 개만 나타나며, 기존 대구기생조합 및 대구예기조합이란 명칭으로 활동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이후 대구기생조합은 대구경찰서의 내명內命에 의해 1927년 1월부터 새롭게 권번으로 바뀌게 됐는데, 그곳이 바로 달성권번이다.
대구기생조합·대구권번·달성권번에 소속된 기생들은 조선시대 경상감영과 대구부에 소속된 관기들에 의해 그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이들 기생단체에 소속된 기존 기생들은 어린 여자아이들을 교육시켜 현장에 내보내는 전문적 한국음악양성소이며 요정 출입의 중개업자라 할 수 있다. 이곳에서 기생들은 여러 가지 전통음악과 관련된 기예를 학습받아 요정에 출입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요정과 관련되는 삶을 살았고, 어떤 기생은 부자富者의 첩妾이 되어 일반적인 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한편 각 기생단체에 소속된 기생들의 개인활동과 어떻게 기생단체를 운영했는지는 앞으로의 과제이다.

목차

1. 머리말:대구지역의 기생단체 이해
2. 대구관기의 역사적 흐름
3. 대구지역의 기생 단체
4. 맺는말:일제강점기 대구기생 단체
참고문헌
〈Foreign language abstra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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