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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류대영 (한동대)
저널정보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한국기독교와 역사 한국기독교와 역사 제37호
발행연도
2012.9
수록면
5 - 35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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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n the Variance Based Self - similar Block Search for Fractal Image Compression선교사 루이스 테이트(Lewis Boyd Tate)는 한국 선교를 시작한 미국 남장로교의 “7인의 개척자(the pioneer band of Seven)”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는 7인의 개척자 가운데서도 가장 먼저 한국 선교를 지원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진정한 개척자(the Pioneer)”였다. 루이스 테이트는 1892년 11월에 동료들과 함께 한국에 도착한 후 1925년 건강 악화로 은퇴하고 미국으로 돌아갈때까지 전주를 중심으로 남장로교 선교를 개척하고 교회를 건설했다.
테이트는 전라북도 지역을 대표하는 선교사로서 순회 전도자, 목사, 건축가, 교회 행정가로 일하며 남장로교 선교의 기틀을 잡는 데 크게 기여했다. 호남지역 최초의 선교지였던 전주 선교지부(station)를 개척하여 호남지역 선교의 중심지로 건설한 일, 전주를 중심으로 전라북도 일대의 미개척지에 대한 순회전도를 통해 75개의 교회를 개척하고 1천 명에 가까운 교인들에게 세례를 준 일, 호남지역 전체의 모교회라고 할 수 있는 서문교회를 설립하고 오랫동안 담임목사로 사역한 일, 그리고 교회법 전문가로서 한국의 장로교 교단조직을 만들 때 그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기여한 일 등은 그의 활동 가운데서도 특별히 기록할 만하다. 그런데 테이트는 다른 무엇보다도 개척 전도자였다. 따라서 이 글은 그가 전주 선교지부를 개척하고 순회전도를 통해 많은 교회를 건설한 일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루이스 테이트 곁에는 그와 함께 개척 선교사로 내한했던 여동생 매티(Mattie S. Tate)와 의료 선교사였던 부인 마르타(Martha B. Ingold Tate)가 항상 함께 있었다. 매티 테이트는 루이스 테이트와 같이 개척 선교사로 내한하여 전주지부를 개척했다. 그는 독신 여성 선교사로서 고된 순회전도자의 삶을 살았다. 마르타 잉골드 테이트는 전주지역 최초의 서양 의사로서 처음에는 의료선교사로 활동하다가 루이스 테이트와 결혼한 후에는 남편을 도와 전도와 목회 및 교육에 전념했다.

목차

1. 머리말
2. 루이스 테이트의 출신과 배경
3. 루이스 테이트의 내한과 전주 선교지부 건설
4. 순회전도자 루이스 테이트
5. 매티 테이트와 마르타 잉골드 테이트의 사역
6. 맺음말
참고문헌
한글초록
Abstract

참고문헌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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