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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송한용 (전남대학교)
저널정보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민주주의와 인권 민주주의와 인권 제12권 3호
발행연도
2012.12
수록면
487 - 520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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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근래 중국과 일본 사이에 영유권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센카쿠/댜오위다오에 관한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영유권을 둘러싼 갈등과 분쟁이 언제부터 형성되었으며,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가를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영유권분쟁의 근본적 원인은 1895년 일본이 센카쿠/댜오위다오를 일본영토로 편입하면서 이미 잉태되었다. 즉 일본이 국제법의 무주지 선점론을 내세우지만, 은밀히 자국의 내각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을 국제적으로 용인되어야 한다고 강변하면서 불거진 것이 현재의 분쟁이라 하겠다. 물론 당시 청조의 무력함과 해양 영토에 대한 무관심의 후과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모호함 때문에 중국은 근대 국제법 이전 이미 중국의 영토였다는 역사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는 반면 일본은 국제법에 기대어 센카쿠/댜오위다오 영유권을 주장하는 논거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다. 이러한 각국의 영유권 주장과는 관련 없이 1969년 센카쿠/댜오위다오 주변 해역에 대량의 천연가스와 석유가 매장되어 있을 것이라는 발표 이후 분쟁이 본격화 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적어도 1990년대 이전까지는 애국주의를 앞세운 민간인들이 분쟁의 중심에 있었다면, 이후에는 양국 모두 국가가 그 중심에 서게 될 뿐만 아니라 센카쿠/댜오위다오를 애국주의 발양기지로 삼고 있는 형국이라 하겠다. 때문에 센카쿠/댜오위다오의 영유권문제는 이후로도 계속 각국의 애국주의 자양분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할 가능성이 많다 하겠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류큐(琉球)의 일본 편입과 센카쿠/댜오위다오
Ⅲ. 1970년 이후 센카쿠/댜오위다오를 둘러싼 분쟁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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