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우진 (경희대학교) 이남옥 (한국학중앙연구원)
저널정보
한국양명학회 양명학 陽明學 제33호
발행연도
2012.12
수록면
227 - 260 (34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글은 강화학파가 혼맥(婚脈)을 통한 사승(師承)관계를 이루었음에도, 기존의 강화학파에 대한 연구들이 계보학적으로 접근한 연구가 소홀하였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그리하여 기존의 강화학파 형성담론을 연구대상으로 삼아 그 담론이 지닌 문제점을 계보학적 연구를 통해 밝히고, 재구성한 강화학파 형성담론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기존의 강화학파 형성담론은 다음과 같이 제시되고 있다. 첫째, 정제두가 현실정치의 혼란과 가족의 불운까지 겹쳐, 둔세(遁世)와 은거(隱居)를 위해 강화도 하일리로 이거(移居)했다. 둘째, 강화학파 형성의 주요 인물인 이광명은 아무런 연고도 없이 강화도로 이거하게 된 것으로, 아마 송부인의 선견지명으로 하나 남은 아들을 지키려 왔을 것이다. 셋째, 신대우는 정제두의 사상을 직접 계승한 인물로, 정제두와 정후일 그리고 이광명에게도 수학하였다. 이후 강화학파의 중요인물인 신작의 혈연적 연결통로로서 의미를 지닌다.
이와 같은 기존의 강화학파 형성담론에 대해, 계보학적 접근을 통해 다음과 같은 반론을 펼쳤다.
첫째, 정제두가 강화도로 이거한 것은 자기 가문의 경제적 기반이 마련된 세거지이자 고향이었기 때문이며, 또한 현실 정치와도 멀어지려 않았다. 둘째, 이광명이 강화도에 이거한 것은 이광명의 조부인 이대성이 강화도에 경제적 기반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셋째, 신대우의 경우 정제두·정후일에게 수학했다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私淑으로 봐야 하며, 이광명보다는 이광려를 실질적 스승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고 신대우는 이광려와 함께 당시 강화학파를 이끄는 실질적 지도자였다.
또 하나 이러한 논증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까지 강화학파 연구에서 주목받지 못한 하나의 중요한 가문인 최규서 집안의 의미를 밝혀냈다.

목차

【요약문】
Ⅰ. 머리말 : 강화학파와 그 형성담론의 문제
Ⅱ. 정제두 강화 정착 담론의 재구성
Ⅲ. 이광명 강화 정착 담론의 재구성
Ⅳ. 신대우의 학통과 강화학파 내의 위상에 관한 담론 재구성
Ⅴ.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4-151-0003008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