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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Yun Sangwon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History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History Vol.18 No.1
발행연도
2013.2
수록면
155 - 184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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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시베리아 내전이 끝난 1922년 이후 연해주 한인사회 정치지형의 변화를 밝혀내는 것이다. 내전에서 소비에트적군과 함께 백군 및 제국주의 간섭군들과 싸웠던 연해주의 한인들은 승리자가 되었다. 그러나 전쟁의 시기가 끝나고 건설의 시기가 시작되면서 연해주 한인사회의 정치지형도 그에 맞추어 변화되었다. 내전 기간에 소비에트적군 및 러시아 빨치산들과 함께 활동하던 한인 빨치산들도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다. 대다수의 한인들은 연해주에 남아 그곳에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과업에 참여했다. 그들은 연해주에서 러시아혁명을 완수하는 사업에 노력을 기울였다.
한편 내전 이후 조선혁명을 위해 새로운 투쟁지를 찾아 떠난 이들이 있다. 그들은 만주와 중국 관내로 진출하여 항일투쟁을 지속했다. 조선혁명의 완수를 위해 조선으로 파견되어 조선공산당 조직운동과 민족해방운동을 전개한 이들도 있었다. 이들 중 많은 수는 상해파 고려공산당과 관계를 맺고 있던 인물들이었다. 이들이 떠난 빈 자리를 내전 종결과 함께 시베리아에서 연해주로 돌아온 한인들이 채워나갔다. 그들은 대체로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 계열과 직간접적인 관계를 가진 인물들이었다. 특히 ‘4월 참변’으로 연해주를 떠났던 예전 대한국민회의 지도자들도 속속 연해주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내전이 끝난 후 사회주의 건설의 도정에 서 있는 연해주에서 당과 정부의 중요 지위를 차지하며 한인사회에 영향력을 확대해 갔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1920년대 중반 연해주 한인사회의 정치지형은 예전 대한국민의회 성원들이 주도하게 되었다. 이것은 블라디보스톡을 중심으로 한 연해주 지방이 이제 더 이상 한인 민족해방운동의 중심지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한일합방 이후부터 1920년대 초까지 해외 민족해방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하던 연해주 지역은 이후 민족해방운동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게 되었다. 다만 러시아 내에서 사회주의 건설에 매진하며 한인들의 생활을 향상시키는 활동이 주로 이루어졌다.

목차

Foreword
The End of the Russian Civil War and the Construction of Soviet Society
People Who Came Back Home, People Who Left, and PeopleWho were Left
‘The Episode concerning the Return of Kim Tonghan to Korea’ and Changes in the Political Topography in the Korean Community in the Russian Maritime Province
Conclusion
Abstract
국문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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