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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경용 (한국교원대학교)
저널정보
교육사학회 교육사학연구 교육사학연구 제21권 제1호
발행연도
2011.6
수록면
1 - 37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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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경의문대”라는 제도로부터 출발하여, 경장기 조선에 인재의 양성과 선발이라는 과제를 둘러싸고 일어났던 일을 보다 자세히 알아보자는 데 일차적인 목적을 두었고, 그 일들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었는지 또는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은 성급히 내리지 말아야 한다는 제안을 함으로써 출발하였다. 일단, 당시 있었던 일이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사실들을 조사하여 가급적 상세히 제시하려고 하였다.
경의문대는 조정에서 국왕·학부대신·성균관장 등이 협의하여 전국에 훈령을 내림으로써 시작되었다. 이는 이전의 관성에 따라 이런 저런 모색을 하던 끝에 이루어진 것이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고시내용의 변화 등 시의에 따른 변용을 도모하였다. 각 지역의 여항에까지 중앙에서 표준화된 문제로 고시하였으며, 중앙의 성균관에 입학한 인원과 각 지역에 흩어져 있는 유생들, 이 양 편에 대해 모두 선발과정을 열어 놓음으로써 조직적 養士와 자발적 修學을 통한 擇仕를 추구하였다.
성균관경학과와 경의문대는 공히 갑오경장 이후(1895·1896년) 시작하여 일제강점 이전까지 지속되었다는 점, 성균관경학과의 교육과정과 경의문대 고시과목 양자의 변화가 서로 조응관계에 있었다는 점, 경의문대에 대한 규정이 성균관경학과 관련 법규에 속해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이 둘이 밀접한 관련성 아래 운영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의 시행배경을 추적해 보면, 그 발단이 이미 고종조 초기에 마련되었으며(1869년 ?태학별단?), 이후 일련의 조치들을(?향학조례?, 京學院·營學·官學院·面學, ?태학규제?, ?흥학장정?등) 감안할 때, 주요 취지는 경학과 시무에 두루 밝은 인재를 전국 각지에서 차차(리→면→군→도→京) 천거후 시취 방식으로 뽑아 들이려는 데 있었다. 즉, 갑오경장 전후 등장한 새로운 교육기관을 통해서만 시무에 밝은 일물을 양성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성균관을 대표로 하는 전통교육기관을 통해서도 경학·시무 양자를 겸비한 인물의 양성·발탁을 추구하였으며, 이런 움직임은 이미 개항 이전부터 시발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지역단위별 천거-시취-등용 방식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에 조선조 사회가 學政에 관한 나름대로의 체계적 얼개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최소한 1700년도까지 연원이 소급되는 ?면학-군학-영학?의 얼개를 갖추는 등 장기간에 걸쳐 조성된 꼼꼼한 교육체제의 구성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전통교육체제는 새로운 내용과 형식의 교육을 시행하는 데에도 기본적인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

목차

요약
Ⅰ. 서론
Ⅱ. 經義問對의 시행배경과 성균관경학과
Ⅲ. 經義問對의 시행과정과 성균관경학과의 운영
Ⅳ. 經義問對의 시행절차와 성균관경학과 유생의 선발
Ⅴ. 논의 및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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