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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신로사 (성균관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전번역원 민족문화 민족문화 제41집
발행연도
2013.6
수록면
71 - 99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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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643년 癸未사행과 당시 副使로서 사행에 참여했던 趙絅을 초기 통신사의 성격과 함께 당시 조선의 대일 인식을 살펴보고자 한다. 1643년 통신사는 사행단파견부터가 다른 사행과 달리 순조롭지 않았다. 조선은 병자호란을 당하였고, 중국의 움직임이 여전히 불안한 상태였으며, 국내적으로는 기근과 질병이 만연한 상태였다. 그러나 조선 조정에서는 대외적 안정을 위하여 일본 幕府 將軍의 후계자 탄생축하라는 전례 없는 파견 요청을 수락하여 통신사를 파견하였다. 1643년 사행의 정사는 윤순지, 부사는 조경, 종사관은 신유였다. 본고는 1643년 통신사행의 개요와 함께 부사였던 조경의 사행록을 고찰한 것이다. 특히 그는 사행에 파견되기 전에 일본과 화친할 것을 주장하였고, 이는 당시로써는 매우 파격적인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는 일본에 가서 일본을 어떻게 바라보았는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본고에서는 조경이 가지고 있던 일본 인식의 성격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결론적으로 조경은 일본과 화친할 것을 주장하기는 하였으나, 내면적으로는 일본을 야만시하고 이적시하였다. 그가 일본과 화친할 것을 주장한 것은 어디까지나 조선의 안위를 위한 외교적인 생각에서 나온 것이었으며, 조경이라는 개인의 생각은 이와는 달랐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동시대 다른 인물들에 비해서는 일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관심은 許穆과 같은 동료문인들에게 전달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1643년 통신사행에 관하여
3. 조경의 사행과 그의 對日 인식에 관하여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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