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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鄭世根 (충북대학교) 鄭鉉淑 (원광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목간학회 목간과문자 목간과문자 제10호
발행연도
2013.6
수록면
335 - 371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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康有爲(1858-1927)는 1888년 북경에서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던 중, ‘어지러울 때일수록 작은 공부에 힘써야 큰 것을 이룰 수 있으며, 어느 시대나 진정한 道는 크기를 따지지 않으므로 작은 주제로도 큰 道를 이루 수 있다’는 친구 沈曾植(1850-1922)의 충고를 듣고 공부에 힘쓰기로 마음먹었다.
강유위는 1889년 包世臣(1775-1855)의『藝舟雙楫』을 넓혀 6권, 27장으로 구성된『廣藝舟雙楫』을 완성했다. 권1(1-3장)은 문자의 정의와 비의 중요성을, 권2(4-7장)는 글씨의 변천 과정, 八分, 후대 모든 비의 원류인 한나라 비를 서술한다. 권3(8-12장)은 衛氏서가의 전통, 귀한 남조 비, 쓸 만한 수나라 비, 비루한 당나라 비를, 권4(13-19장)는 모두 갖춘 북위 비, 비의 근원, 열 명의 해서 서가 , 비의 품등, 비의 평가 등을 설명한다. 권5(20-23장)는 붓 잡는 법, 글씨 쓰는 법, 학서 방법, 자신의 학서 과정을, 권6(24-27장)은 편액 글씨, 행서와 초서, 과거 서풍인 干祿體, 碑글씨의 아름다움을 詩로 이야기한다.
이 책의 요체인 7장은 모든 글씨의 근본은 漢碑임을 말한다. 한 이전에는 해서가 없었고 漢?魏사이에 비로소 해서가 출현했다. 해서는 오나라 <葛府君碑>와 위나라 종요의 <宣示表>?<薦季直表> 등에서 시작되어, 동진의 二王(왕희지?왕헌지)에 이르러 형태를 갖추었다.
전서의 필의가 많은 西漢分에는 李斯의 필의가 있고, 東漢分의 근본이 되었다. 한말에는 글씨의 발전이 최고조에 달해 높은 풍격, 새로운 뜻과 색다른 형태, 자유로움이 한데 어우러졌다. 漢을 근본으로 한 魏?晉의 글씨는 고상하고 예스러웠다. 유년시절 衛夫人의 글씨를 배운 王羲之도 후에 한비와 위비를 모범으로 삼아 뛰어난 글씨를 쓸 수 있었다.
남북조 비에는 한나라 八分과 隸書의 필법이 있다. 당나라 저수량의 <伊闕石龕銘>, 구양통의 <道因法師碑>, 안진경의 <裴將軍詩>에도 같은 필의가 있다. 수많은 육조 조상기가 소박하고 충실하며 뛰어난 아름다움 속에 색다른 모양을 지니고, 많은 小唐碑가 자유로운 것도 漢碑를 본받았기 때문이다.
청나라 사람들은 院體를 열심히 연습했기 때문에 그 서풍이 몸에 배어 전대인 송나라 소식, 명나라 동기창의 필법으로 옛 것을 본받고자 해도 잘 되지 않았다. 비루하고 천박한 필법을 벗어날 수 없어 고상하면서 예스러운 글씨를 쓸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글씨를 잘 쓰려면 반드시 한나라 글씨를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목차

국문초록
自敍(머리말)
제7장 本漢(한나라 글씨가 근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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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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