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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금표 (한국외국어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외국어대학교 인도연구소 남아시아연구 남아시아연구 제18권 제1호
발행연도
2012.6
수록면
61 - 96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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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Bose가 간디-어윈 협정을 비판한 내용을 고찰한 논문이다. 보세가 간디-어윈 협정을 비판한 내용은 다음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간디-어윈 협정이 독립 문제를 논외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라호르 대회에서의 독립 선언, 소금행진, 1차 원탁회의의 불참 등 국민회의가 영국을 상대로 한 투쟁은 인도의 독립 혹은 자치령 지위 부여에 대해 영국이 미온적 태도를 보였기 때문인데, 간디가 총독과 협상하면서 독립 문제는 다루지 않고 시민불복종 운동을 중지시킨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둘째, 간디-어윈 협정에서 규정한 정치범 사면 범주가 비폭력 운동자로 제한되었다는 것이다. 국민회의의 대표이며 동시에 인도를 대표하는 간디가 정치범 사면의 대상으로 그를 따르는 비폭력 시민불복종운동자로 한정함으로써 간디는 국민회의와 사뜨야그라히의 대표일 뿐 전 민족주의자들의 대표, 전 인도인들의 대표라는 면모를 발휘하지 못했고, 이것이 인도 민족주의 운동, 대영투쟁을 위한 단합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셋째, 간디-어윈 협정과 2차 원탁회의 참석 이후 간디의 행보는 지도자로서 실패를 드러낸 것이다. 그러므로 국민회의는 대영 투쟁의 방법과 수단을 바꾸어야 한다. 특히 1930년대의 상황에서는 좀 더 급진적인 투쟁이 전개되어야 하는데, 간디는 그러한 투쟁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지도자의 교체는 필수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간디-어윈 협정 체결과 이후 간디의 정치적 활동에 대해 보세가 지적한 것은 독립 투쟁이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타당성 있는 비판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민족주의자들 특히 독립투사들은 비폭력 이념을 설파하는 정신적 지도자 간디가 아니라 인도를 독립시켜줄 정치적 지도자 간디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비폭력 투쟁을 앞세우고, 정치적 독립보다 사회적 문제를 앞세워 영국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노력에서 멀어진 모습을 보이는 간디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실질적으로 지도자를 바꾸지 않고서는 독립이라는 목표에 매진할 수 없다는 보세의 비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목차

국문요약
1. 서론
2. 간디-어윈 협정
3. 독립 논의 외면에 대한 비판
4. 정치범 사면에 대한 비판
5. 보세-빠뗄 선언
6.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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