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조선혜 (감리교신학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한국기독교와 역사 한국기독교와 역사 제39호
발행연도
2013.9
수록면
33 - 68 (36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3)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논문은 노블 부인(Mattie Wilcox Noble, 1872-1956)이 선교현장에서 형성한 사회관계망을 탐구하는데 목적이 있다. 노블 부인은 1892년 6월 노블(William Arthur Noble, 1866-1945) 선교사와 결혼한 직후 고향 펜실베니아 윌크스배러(Wilkes-Barre)를 떠나 1892년 10월 한국에 도착했다. 1934년 한국을 떠날 때까지 전반기에는 평양을 중심으로 서북지방에서 선교활동을 전개하였고, 후반기에는 서울과 중부지방에서 활동했다. 노블 부인은 한국감리교회 최초로 체계적인 여자사경회를 시작했으며, 어린이주일학교와 영아부를 독자적으로 조직했다. 노블 부인은 42년간의 한국생활을 기록으로 남겨놓았는데, 특히 자신의 가정에서 이루어진 만남과 사역에 대해서 기록하며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세밀하고 솔직하게 소회까지 밝히고 있어 그의 사회 관계망을 해명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노블 부인은 일차적 사회관계망인 가족, 혈연 및 지연에 있어 매우 성공적인 관계를 형성하였다. 부부 관계, 자녀들의 성장과 성취 그리고 고향에 두고 온 혈연과 지연에 의한 정서적·물질적 후원은 40년 넘는 한국선교생활의 원동력이 되었다. 다음으로 노블 부인의 선교사 관계망은 선교사업을 추진하는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선교사들은 가정의 대소사와 자녀교육, 생필품의 구입 등의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하였고 미국의 국경일이나 교회 절기, 개인적인 기념일, 선교 상 주요한 행사 등을 함께 지키면서 정서적 유대를 공고히 해나갔다. 교파를 초월한 선교사간의 지지와 협력도 추구하였다.
그렇지만 선교사들의 선교사업이 유지되고 확산되는 통로는 한국인 관계망이었다. 노블 부인은 한국인 고용인, 남녀 장학생들을 통해 가정사, 개인적인 업무 그리고 선교사업에 이르기까지 도움을 받으면서 선교 사역의 효율성을 꾀할 수 있었다. 노블 부인의 전도부인들은 부부동역, 여성지도력의 발휘, 순행전도의 모범을 보이며 교회를 개척하고 여성들을 계몽하였다. 선교사를 영적인 부모로, 스승으로 여겼던 초기 한국기독교 지도자들은 선교사와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선교사들에게 배운 복음과 선교관을 확산시켜 나갔으며, 복음을 전한 선교사와 이를 받아들인 한국인들은 상호작용을 통하여 변화되고 융화되었다.
이 논문은 노블 부인의 기록을 통해 그려지는 사회관계망을 통해 선교활동의 인적·물적 토대와 함께 선교사업의 계승과 확산의 구조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데 의미를 둘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무의미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왔던 선교사 개인의 일상 속에 녹아 있는 사회관계망을 통해 선교 현장의 세밀화를 그려보는 것은 한국기독교의 정체성을 규명하기 위한 또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노블 부인의 저널(Journal)을 통해 본 관계망 구조
Ⅲ. 서양인 관계망
Ⅳ. 한국인 관계망
Ⅴ. 맺음말
참고문헌
한글초록
Abstract

참고문헌 (14)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4-230-002817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