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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남희 (원광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동양정치사상사 제12권 제2호
발행연도
2013.9
수록면
57 - 76 (20page)

이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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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고려 과거제도와 공공성의 관계에 대해서 주목하고 있다. 과거제가 처음 도입된 것은 광종 9년(958)의 일이다. 광종이 새로운 인재 등용 방식인 과거제를 도입한 일차적인 이유는 호족 출신의 공신세력을 누르는 한편, 자신과 고려에 충성스러운 문신 관료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
시험을 쳐서 인재를 선발한다는 점에서 과거는 기본적으로 공공성과 친화력을 갖는 것이었다. 하지만 과거는 신분을 초월해서 오로지 실력에만 기준을 두는 관인등용법은 아니었다. 응시할 수 있는 신분층이 한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고려사회의 경우 귀족제적인 특성이 드러난다. 그 같은 특성은 5품 이상 관료층의 자녀에게 관직 등용의 문을 열어준 음서제에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실증적인 조사에 의하면, 음서 보다는 과거 출신자들이 관직 진출에서 여러 가지로 유리했다.
전근대 사회의 공공성은 신분제의 변화라는 커다란 흐름 속에서 단계적으로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고려는 귀족제 사회를 이루면서도 과거제를 실시하여 능력본위의 인재 선발 제도를 도입했다는 점은 공공성의 확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 고려시대 과거제의 공공성과 그 특성이 나타난다고 하겠다.
그래서 고려시대 과거제의 경우, 한편으로는 공공성에 친화력을 갖는 측면도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음서를 통해 관직에 입문한 자들이 자신들의 승진과 지위의 상승을 위해 이용하는 출세의 사다리라는 측면도 없지 않았다. 그런 만큼 복합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이 고려사회의 과거제가 지닌 공공성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조선 사회의 과거제가 갖는 사회적 성격과 비교할 때 확연히 구별되는 측면이기도 했다.

목차

논문요약
Ⅰ. 머리말
Ⅱ. 과거제와 공공성
Ⅲ. 고려시대의 과거제: 운영과 응시자격
Ⅳ. 고려시대의 과거와 음서 그리고 공공성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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