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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호동 (영남대학교)
저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藏書閣 제30집
발행연도
2013.10
수록면
110 - 143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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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도군절목」은 흔히들 1902년 대한제국 內部에서 울도군에 내린 행정지침이라고 이해하고 있지만 실상 울도군 군수 배계주가 ‘郡規’ 확립을 위해 절목을 만들어 내부에 보고한 것이다. 내부에서는 울도군수가 제출한 ‘절목’을 검토하여 ‘後錄’을 작성하여 1902년 4월에 내각총리대신 尹容善에게 보고하였다. 그 자료가 배계주 집안에서 소장되어 전하기 때문에 울도군수인 배계주가 올린 「울도군절목」을 그대로 시행하라는 내부의 공문이 배계주에 하달되었을 것이다.
배계주는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의 반포로 인해 첫 울도군수에 임명되었다. 그렇지만 울릉군 지역 주민들과 다툼에 의해 육지로 나왔다가 면직되었다. 그 후 1902년 3월 7일에 울도군수에 재임용되었다. 울릉도 주민과의 다툼으로 인해 면직된 배계주는 군민들을 장악하기 위해 ‘군규’를 만들어 「울도군절목」으로 이름하여 내부에 상신하여 내부의 재가를 받아 그것을 받아 울릉도에 부임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울릉도에 부임하지 못하고 첫 울도군수로서 한 행적 때문에 재판에 회부되어 결국 면직되었다. 그로 인해 울릉도에 들어가 언문으로 등사하여 각 洞에 게시하지 못하였다. 시행되지 못한 「울도군절목」을 두고 독도를 포함한 울릉도 관할구역을 대한제국이 실효적으로 경영한 증거로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울도군절목」은 울릉도 각동에 게시된 ‘군규’는 아니었지만 그 절목을 통해 1902년대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료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 절목은 언문으로 번역하고 등사하여 각동에 게시하고자 한 것이니 일본인이 아닌, 본국인을 대상으로 한 ‘郡規’이다. 그렇지만 절목에는 울릉도 재류일본인과의 갈등이 심각하게 보인다. 당시 울릉도의 현안은 일본인이 행하는 무단 벌목과 가옥, 토지 매입이었다. 또 울도군의 행정체제를 어떻게 확립할 것인가, 세수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울도군절목」에는 그것이 담겨 있다. 특히 서문에는 울도군수와 울릉도 주민과의 갈등이 나타난다.

목차

국문요약
Ⅰ. 머리말
Ⅱ. 「鬱島郡節目」의 탈초문과 번역
Ⅲ. 「鬱島郡節目」에 나타난 울릉도의 사회상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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