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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사교육학회 미술사학 美術史學 第27號
발행연도
2013.8
수록면
7 - 37 (31page)
DOI
10.14769/jkaahe.2013.08.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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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다섯 명의 조선시대 임금(太祖·英祖·哲宗·高宗·純宗)의 초상화들의 미술사적 가치를 새로운 방법론으로 분석한 연구 결과이다. 이들의 초상화, 즉 御眞들은 이상적 사실성을 근간으로 하여 왕들의 위엄과 권위를 가장 잘 담아내고 있다. 권위를 묘사하기 위한 조선시대 어진의 사실성은 왕들의 신체적 특징까지 정밀하게 포착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어진을 통해 드러나는 왕들의 신체적 특징들은 의학적 판단이 가능하며, 李濟馬(1837-1900)의 ‘四象體質論’은 그 주요 이론이 된다. 결국 본고에서 필자는 어진을 미술사적 방법론과 『朝鮮王朝實錄』 등 기록을 통한 의학적 방법론으로 분석하여 그것의 역사적 가치를 매기고자 하였다.
임금의 초상인 어진은 특히 ‘권위와 위엄’을 그려내야 하고, 제작에서부터 봉안에 이르기까지 매우 중요한 의례적 절차가 필요했다. 따라서 어진을 제작하는데 많은 토론이 필요했고, 봉안에 이르는 과정은 儀軌로 남겨졌다. 또, 어진 자체도 複本을 만들어 훼손 등의 사태에 대비했는데, 이러한 배려는 시대를 넘어 어진속 제왕의 형상이 원래의 모습대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현전하는 朝鮮 太祖 李成桂(1335-1408)의 어진은 複本 가운데 하나이며, 17세기의 移模本을 母本으로 20세기 초에 다시 移模된 작품이다. 移模를 거쳤지만 ‘태조 이성계 다운 위엄과 권위’가 그대로 전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현전어진으로 그의 성격과 체질을 판단하는 데 무리가 없다. 어진 속의 태조 이성계는 매우 뚜렷한 외모만큼 『太祖實錄』, 『承政院日記』 등에서 보이는 기록과도 일치하는 강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또 기록에서 추리할 수 있는 이성계의 병증들도 그 성격과 상관관계가 있었다. 李濟馬의 사상체질론으로 판단하면 이성계는 ‘太陽人’에 해당한다.
英祖 李昑(1694-1776)의 어진도 18세기에 만들어진 모본을 바탕으로 1900년에 이모되었으나 영조의 모습을 잘 유지한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현전하는 영조 어진과 18세기 당시의 사대부들의 초상이나, 영조의 청년기 초상인 〈延?君 肖像〉을 대조해 보면 기법에 차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또 영조의 어진보다 약 50년 먼저 그려진 哲宗의 어진에서 서양화법이 보이는 것을 감안하면, 1900년에 이모되었더라도 18세기의 양식과 통하는 형식들은 18세기 당시의 화사가 그려내려던 영조의 ‘군형’이 1900년 이모 당시에도 유지될 수 있는 논리적 근거가 된다. 결국, 날카로운 외모가 특징인 영조의 어진은 형상이 소양인이나 매우 세심한 성격과 脾胃虛寒한 병증 등을 반영하면 그의 四象體質은 ‘少陰人’에 해당한다.
哲宗 李元範(1831-1863)은 군복 차림의 어진을 남겼다. 1/3 정도가 불에 타버렸으나 19세기 중반의 조선 초상화의 특징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물임을 살피는데 방해되지 않는다. 19세기 조선 사대부 초상들에 서양의 음영법 등이 적극적으로 활용되어 사실성을 추구한 것처럼 철종의 어진도 서양 화법이 뚜렷하다. 눈이 크고 눈썹이 짙은 철종은 밝고 명랑한 ‘少陽人’처럼 보이나 기록으로 본 성격은 너그럽고 원칙을 따르는 ‘太陰人’이다. 이는 그가 앓은 병에 ‘太陰人’에 맞는 처방을 한 것에서도 증명된다.
高宗 李熙(1852-1919)의 어진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활동한 화사 蔡龍臣(1848-1941)의 작품이다. 채용신의 사대부 초상화들에 서양화 기법이 많이 쓰인 것처럼 高宗의 어진도 음영법 등을 사용하여 사실성을 충분히 담보하고 있다. 고종은 외모와 성격이 일치하는 예로, 그는 소심하면서 열성 약제가 필요한 ‘少陰人’이었다.
純宗 李拓(1874-1926)의 어진은 ‘사진’과 관계가 깊다. 순종의 초상을 그린 金殷鎬(1892-1979)도 사진에 화사들이 관심을 가졌던 시대적 환경의 영향을 받은 듯, 그가 그린 純宗 어진의 草本은 얼굴이 사진처럼 정밀하게 묘사되었다. 이는 조선초기 어진부터 이어져 오던 이상적 사실성은 촬영된 사진과 같은 묘사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이 어진 속의 순종은 윤곽이 분명한 얼굴이며 중후하여 ‘太陰人’으로 보인다. 이는 고집이 강하며 변화를 거부했던 그의 성격과도 일치하며 태음인의 처방이 적절했던 병증과도 합치된다.
결론적으로 조선시대 어진은 시대적 양식의 조류에 따라 형태가 변하지만 ‘君形論’을 놓치지 않았다. 각 시대의 화사들은 왕들의 권위를 담아내는 데 최선을 다 했고, 그것은 ‘이상적 사실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의 결과로 나타났다. 그러한 노력은 오늘날 어진을 통해 주인공의 성격과 체질을 알아보려는 본고의 시도를 뒷받침하게 되었다.
본고의 연구방법은 미술사적 분석과 한의학 방법론인 사상체질론의 습합이었다. 이러한 습합은 어진을 입체적으로 해석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입체적 연구를 통해서 어진, 나아가 초상화의 기록성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고, 그를 통해 當代의 사람과 그 삶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이는 새로운 인문학적 시도로서 앞으로 사대부 초상에도 적용되어 확장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확장을 통해 한 인간의 본질을 담아내려 했던 초상화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연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목차

Ⅰ. 서론
Ⅱ. 御眞의 ‘寫實性’
Ⅲ. 조선시대 어진에 나타난 사상체질
Ⅳ. 결론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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