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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성환 (경기도박물관)
저널정보
한국역사민속학회 역사민속학 역사민속학회 제42호
발행연도
2013.7
수록면
7 - 35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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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은 20대 초반부터 고려와 원의 同文意識은 물론 자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존인식인 東人意識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이 같은 중층적인 의식은 깊이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색뿐만 아니라 당시 고려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조선씨[단군]에서 시원하는 고려 역사의 유원성을 자부하며 관인으로서 국가의 계책에 게을리 할 수 없음과 항상 마음에 걸리는 것이 고려라고 하여 자신의 포부를 드러내기도 했다. 또 자신이 나라에 몸 바치는 것은 현명한 임금 때문이라고 하여 공민왕의 개혁정치를 참여하고 고려의 사직이 무너지지 않을 방법을 찾는데 골몰했다.
그가 본 참성단에 펼쳐진 산하의 장대함은 고려 사직의 장대함 그것이었다. 여기서 그는 초례를 주관하며 청사를 고하고 소지하며 고려의 태평년을 소망했다. 이색은 유학자로서 썩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초례를 주관한다는 점을 출발 전이나 재계하면서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초제를 마친 후의 심정은 홀가분했다. “얻음이 있는 듯하여 기쁜 마음이지만, 말로 전하지 못하여 애석하다”는 점에서 그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또 재궁을 출발하면서는 “돌아가는 안장에 長生福을 가득 실어 우리 왕께 바치어 태평성대를 이룩케 하리”라는 의지를 밝혀 초례에 만족감을 표하고 있다.
그가 참성단 초례를 주관할 향사로 마니산을 찾은 것은 1358년(공민왕 7) 가을이었다. 공민왕의 개혁 정치가 적극 추진되었던 때였다. 이런 시점에서 이색이 참성단 초례를 주관하고 있음은 상당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공민왕은 역시 왕정복고를 위해 원의 친행을 결행하려고 참성단 초례를 지낸 원종의 일을 우선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이후 매년 거행되었던 참성단 초례를 통해 개혁과 중흥의 의지를 다잡을 필요가 있었을 것이고, 이색에게 그 일을 담당하게 했던 것이다. 이색의 마니산 기행은 이런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하는 배경과 목적에서 이루어진 것이었고, 향후 원과의 관계에서 신중할 수밖에 없었지만, 공민왕의 개혁정치를 지지하고 이끌 그의 입장에서, 조선씨에서 출발하는 역사인식에 토대하여 참성단에서 그 의지를 다졌다는데서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다.

목차

[국문요약]
1. 머리말
2. 20대 이색이 본 고려의 현실인식
3. 「마니산기행」을 통해 본 이색의 여정
4. 1358년(공민왕 7) 이색의 참성단 제사 목적과 의미
5.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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