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강경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외국어대학교 인도연구소 남아시아연구 남아시아연구 제19권 제2호
발행연도
2013.10
수록면
1 - 32 (32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1857년의 세포이항쟁은 인도의 근대역사에서 분수령을 이룬다. 이를 계기로 아대륙에 흩어져 살던 인도인들이 최초로 민족적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고, 향후의 통일국가로 가는 길에 들어선 것이다. 동시에 지배자였던 영국도 이전까지 영국 동인도회사에 의한 간접적 지배방식을 끝내고, 이제 영국정부에 의한 직접적인 통치시대를 열었다. 이전까지 회사에 부여했던 특허법과 규제법에 의한 통치방식 대신에 인도의 정부법을 제정해서 인도의 헌법으로 삼았다.
1858년의 정부법에서 시작해서 1861년, 1892년, 1909년의 법 등 많은 참사원법들이 지속적으로 개정되어 풍부한 내용으로 변화되었다. 물론 이들 법 사이에도 작은 개정작업이 행해졌다. 이 과정에서 영국은 광활한 영토와 인구를 가진 인도를 근대적 국가로 바꿔나갔다. 영국은 당시에 세계 최대 강국이었고, 동시에 정치적으로 가장 선진국이었다. 영국이 인도에 도입하고자 했던 통치의 기본방향은 서구식 모델 즉 중앙정부는 의원내각제의 실시를, 중앙과 지방 사이에는 연방제와 지방자치제의 도입에 두었다. 이런 목표는 특히 「1919년의 인도정부법」에서 상당히 구체화되었다. 이 법은 다음 「1935년의 인도정부법」으로 더욱 상세화 과정을 거쳐 현대 인도헌법의 기본골격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와 같은 헌법제정과 법치주의적 통치방식의 외형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본질은 식민지 통치였기 때문에 ‘본국에서 통제하는 전제정’을 벗어날 수 없었다. 주권과 인권보장이 결여된 헌법이 갖는 궁극적 한계는 인도인들의 지속적인 불만표출과 저항을 피할 수 없었고, 그 해결점은 인도의 독립 외에는 없었다. 이 글은 영국의 인도에 대한 입헌주의적 통치방식의 도입과정과 그에 대응했던 인도인들의 대립과정을 살피는 데 목적이 있다.

목차

국문요약
Ⅰ. 머리말
Ⅱ. 초창기 인도정부법의 전개
Ⅲ. 「1909년 인도참사원법」
Ⅳ. 「1919년 인도정부법」
Ⅴ. 평가 및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3)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4-900-0034936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