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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문선주 (홍익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미술사학회 미술사학연구(구 고고미술) 美術史學硏究 第277號
발행연도
2013.3
수록면
69 - 103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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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기녀들은 주로 궁중과 지방의 연회를 담은 기록화, 申潤福(1758-?), 金弘道(1745-?)의 풍속화에 표현되었다. 또한 李命基가 姜世晃(1713~1791)에게 그려준 기녀 단섬의 초상 등 단독 기녀초상의 기록이 남아있고 기녀 초상으로 추정되는 작품들이 현전하고 있다.
기녀는 18-19세기가 되면 그림의 주소재로 등장하거나 그림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였다. 기녀는 18-19세기 기록화에서 궁정의 내연, 왜사 등의 사신을 접대하는 잔치, 지방관 부임 축하 잔치에서 공연하는 공식적인 역할로 표현되었다. 기록화에서 기녀는 개별성은 드러나지 않고 연회를 담당한 익명의 존재로 표현되었는데 이는 공식적 정재복식이나 가무복식을입은 집단으로 표현되거나 女樂, 女伶이라는 기예를 중심으로 호칭하는데서도 확인된다.
18-19세기 기녀들은 문인들의 私宴에 참석하였고 이것이 풍속화에 표현되었었다. 기녀들은 잔치에서 무표정한 모습으로 주로 표현되었는데 이는 당시 사대부들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여인을 이상화하여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 사대부들의 연회는 야외에서 주로 이루어졌는데 이것은 중국 명대부터 시작되어 조선도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기녀를 다룬 풍속화는 <妓房爭雄>, <路上逢妓>, 野宴 등 몇가지 장면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이러한 전형적 장면은 화보처럼 만들어 많은 양을 제작, 배포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그만큼 당시 기녀 풍속화의 수요가 많았고 그에 따라 선제작 후주문으로 제작방식이 변화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녀의 일상을 표현한 그림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소품문이나 패관소설의 유행등 조선후기 문학에 공안파 문학이 미친 영향이 회화에도 반영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기녀초상화는 완상용과 제의용으로 나눌 수 있는데 완상용인 기녀초상은 문인들이 개인적으로 주문하였고 제의용 기녀초상은 관청에서 주문한 것이었다. 용도에 따라 기녀 표현도 달라지는데 완상용은 교태있는 입상으로, 제의용은 경건한 자세의 좌상으로 제작되었다. 이들 기녀 초상화는 인물초상을 잘 그렸던 화원화가, 사대부화가들에 의해 주로 제작되었는데 이들에 의해 고사에 근거한 중국사녀도 풍의 미인도와 달리 조선여인을 모델로 한 미인도가 정착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여인을 대상으로 한 미인도는 중국 역사나 문학의 고사에 근거한 중국 복식을 한 사녀도류의 미인도와 함께 조선후기 미인도 감상의 열풍의 중심에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목차

Ⅰ. 머리말
Ⅱ. 기록화에 표현된 기녀
Ⅲ. 풍속화에 표현된 기녀
Ⅳ. 초상화에 표현된 기녀
Ⅳ.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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