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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金景淑 (조선대)
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사학연구 제103호
발행연도
2011.9
수록면
121 - 160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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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묘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遷葬은 爲先意識에 근거하여 조선 중후기에 활성화 하였다. 천장의 배경에 대해서는 宗山의 형성과 부계 분묘의 집중화, 풍수설의 유행과 地師의 폐단 등이 언급되고 있다. 이 외에도 천장은 분산 위치와 분산 수호자의 거주지의 연관성에서 그 배경을 찾을 수 있다. 해남 백련동에 세거한 해남윤씨 어초은공파 후손가의 분산 수호실태는 조선후기 사대부가의 遠地墳山守護와 천장을 통한 近地墳山으로 전환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분산 수호를 실현하기 위한 자손들의 대응 방식이라는 측면에서 천장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조선후기 천장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현상은 산송 발생의 직접적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분묘를 옮기는 천장은 그 자체 분쟁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실제 조선후기 산송 발생의 한 요인이 되었다. 해남윤씨가에서 경기 지역의 尹爾錫과 尹斗緖분묘를 강진 덕정동 선산으로 천장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2건의 산송 사례는 천장과 산송의 밀접한 연관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산송은 원지분산의 근지분산으로 전환 과정에서 추진된 천장이 소송의 발단이 되었다. 전개 과정에서는 族山의 선조 분묘에 繼葬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친족 간에 私掘이라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동원하며 치열하게 대립하였으며, 계파 간의 갈등이라는 특성을 띠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중은 친족 집단을 대표하는 기구로서 족인 간의 분쟁을 적극적으로 중재하고 和會를 유도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금장자 측에서 私掘까지 동원하며 저항하는 모습은 조선후기 산송의 격화 현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으며 문중 역할의 한계성을 드러낸다.

목차

요약
머리말
Ⅰ. 해남윤씨가의 墳山守護와 遷葬
Ⅱ. 18, 19세기 族山 繼葬과 친족 분쟁
맺음말
Abstract

참고문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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