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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현진 (서울대)
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사학연구 제98호
발행연도
2010.6
수록면
41 - 89 (4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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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대 육신의 단종 복위 사건이 계기가 되어 단종은 ‘君’으로 강봉, 賜死되고 육신은 亂臣으로서 죽임을 당했다. 이후 노산군의 立後와 致祭를 중심으로 논의가 지속되었고, 숙종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제자리를 찾았다. 단종과 육신의 제자리 찾기 논의 과정과 단종 관련 사적의 정비, 단종에게 충절을 다했던 사람들에 대한 ?? 과정 등 이들을 살펴보는 것이 본고의 주된 목적이었다.
숙종대에 들어와 노산군이 단종으로 복위되고 육신의 관작이 복권되었다. 숙종은 ‘군신의리’의 표상인 이들의 제자리 찾기를 주도하면서 붕당정치에서 탕평정치로 국정 운영 체제를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영조는 숙종을 이어서 단종 관련 사적을 정비하고 육신만이 아니라 계유정난 피화인인 三相(황보인?김종서?정분), 심지어 궁인들까지 현창 대상을 확대시켰다. 또 육신과 삼상에게 ‘忠’字 시호를 내려 이들의 충절을 국가적 차원에서 공식화했다.
정조는 숙종과 영조를 이어서 위 사업을 계승함은 물론 두 국왕보다 한층 더 확대 발전시켰다. 단종의 능인 莊陵에 配食壇을 건립하여 단종관련 피화인을 최대한 배식하여 기존 사업을 집대성했다. 이는 후일 사도세자의 국왕 추숭을 대비한 사도세자 보호세력의 현창을 위한 典範로서의 의미가 있었다. 이로써 단종 관련 현창 사업이 일단락되었다.

목차

요약
머리말
Ⅰ. 숙종대 단종 복위와 육신 복권
Ⅱ. 영조대 단종 관련 사적의 정비
Ⅲ. 정조대 장릉 배식단의 건립
맺음말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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