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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정란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55호
발행연도
2014.5
수록면
7 - 41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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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 필자는 왕위를 독점하기 위해 고려왕가가 채택한 전략과 그것의 변화과정을 살펴보았다. 고려 왕가는 天命論으로 즉위의 정당성을 내세웠지만, 한편으로는 초월적 권위에 기대어 왕권의 절대권을 구축하기도 하였다. 다시 말해 聖人君主論과 神聖君主論을 병행하였다고 할 수 있는데, 후자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바로 ‘龍孫認識’이었다.
용손의식은 국초부터 형성되었다. 그런데 사실 그것은 형성과 동시에 사회적 효용성을 잃을 운명에 있었다. 유교적 합리주의 사고체계는 용왕이나 용의 후손이라는 다소 ‘고전적인’ 논리가 설 자리를 빼앗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용손의식이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神聖을 끊임없이 수혈하는 시스템의 마련이 필요했다. 고려의 경우 신성의 수혈은 독점과 배제로 이루어졌다. 용손 끼리의 근친혼을 지속함으로써 자기들만의 왕국을 만들어 독점을 강화하였다. 한편,용손 안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파생되는 小君을 배제하여 神聖을 저해하는 요소를 끊임없이 제거시켜 나갔다.
위와 같은 과정을 통해 구축된 기반 덕분에 여러 번의 강력한 도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성왕가는 독점권을 잃지 않았다. 무인집정들은 개성왕가의 독점권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龍孫十二盡이라는 讖言을 퍼트렸지만, 그러한 노력은 도리어 용손의식의 뿌리가 당시에 얼마나 강고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줄 뿐이었다.
한편, 고려왕가는 몽골의 등장이후 몽골황실과의 밀착을 이룸으로써 왕권의 강화와 권위의 회복을 동시에 이루었다. 하지만 대원관계의 지속은 왕권이 상대화되는 결과를 낳았고, 그것은 권위의 하락과 용손의식의 쇠퇴로 이어졌다. 그로 인해 고려영내에서 개성왕가가 차지하고 있던 왕위의 독점권이 서서히 부정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瀋王의 왕위도전으로 우선 표출되었다. 나아가 왕위계승권을 그 동안 원천 차단당하였던 小君들의 도전으로 이어졌다. 물론 소군들의 도전은 번번이 실패하였지만, 그것이 ‘사실상’소군이라고 할 우왕의 즉위를 유발했다는 측면에서 상당한 의의가 있다.
그런데, 우왕의 즉위는 고려왕가에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했다. 왕권의 상대화와 소군들의 도전에 따른 용손의식의 붕괴가 고려후기 고려왕가에게 왕권의 정통성을 제공하는 원천이었던 元朝의 쇠락과 함께 이루어짐으로써, 고려왕이 정통성을 기댈 근거가 희박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결국 왕권의 정당성을 입증할 이데올로기가 사실상 고려 왕가에는 부재하게 된 것이었는데, 이런 와중에 禑王과 昌王이 왕씨의 후손이 아니라는 說이 제기됨으로써 고려는 멸망하게 되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고려 전기 龍孫意識을 통한 권력의 독점
3. 고려 후기 왕권의 상대화와 독점권의 위축
4.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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