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주성 (전주교육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74
발행연도
2014.6
수록면
79 - 105 (27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궁예가 철원 도읍 14년 동안에 화려한 도성을 축성하였다면, 외국의 사신이 자주 드나들었던 후백제의 도성 역시 화려하고 웅장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현재 남아있는 자료는 후백제 도성에 대하여 살펴보기에는 거의 없을 정도로 빈약하다. 그러나 최근 고고학 발굴성과를 최대한 활용하고, 전주의 지형 구조를 기반으로 기존의 문헌사료를 재해석한다면 도성의 위치와 규모를 추정해볼 수 있을 것이다.
1912년에 제작된 지도에 남아있는 격자형 도로는 통일신라시대에 형성된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격자형 구획의 중심부에 통일신라의 치소가 있었다면, 후백제의 왕궁도 통일신라의 치소 부근에서 찾아질 것이다. 역시 고려와 조선의 행정치소의 위치도 이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격자형 구획 안에 위치한 일제시기 도립병원 자리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는 쌍사자전은 이를 사용하여 축조된 건축물의 위세를 짐작케해주며, 역시 격자형 구획의 중심부인 전라감영의 선화당 위치를 찾기 위한 발굴에서 찾아진 막새를 사용한 건물은 통일신라 전주의 중심 건물이었다고 한다. 격자형 구획이 도심의 중심부를 형성하였다면 이곳에 후백제의 왕궁이 건립되었던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이어서 후백제 도성의 규모를 도성의 오악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견훤은 대왕의 위세에 걸맞게 수도 전주에 오악을 배치하였다. 후백제 시기 오늘날의 승암산을 중자산으로 불렀던 것으로 보아 중악으로, 현 완산칠봉을 남복산으로 불러 남악으로, 현 화산을 서악인 화산으로, 현 건지산을 북악으로, 현 고달산을 태산으로 불러 동악으로 비정하였다. 격자형 구획으로 나누어진 지역이 도성의 내성을 형성하면서, 오악을 따라 연결되는 선을 도성의 외성으로 상정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후백제의 왕궁 위치
Ⅲ. 후백제의 도성 규모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0)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5-910-0017045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