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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張日圭 (한국학중앙연구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74
발행연도
2014.6
수록면
107 - 140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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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하대에 선승들은 진성왕 이전까지 지방호족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지만, 한편으로는 왕실이나 중앙 귀족의 후원도 받았다. 선종 사찰은 대체로 서남해 지역에 주로 자리하였는데, 그곳에서는 후원 불사를 통해서 석탑과 불상 등이 조성되었다. 서남해 지역의 불교계가 다양한 세력과 관계하였기에, 이 지역 선승은 선종 사상을 내세우면서 교학 불교에 소홀할 수 없었다.
신라 하대 서남해 지역은 선종 불교의 중심지이자 교종 불교를 함께 이해하는 교섭과 융합의 장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후백제 견훤의 불교 정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 글은 서남해 지역 선승의 활동과 사상을 시기별?지역별로 나누어 살피고, 후백제와의 관련성을 고찰한 것이다.
신라 하대에 무주와 전주 등 서남해 지역은 물론 강주와 웅주 등 주변 지역에는 여러 사찰이 자리하였다. 화엄사, 금산사, 해인사, 보원사 등은 820년대 말~890년대 말에 교학 불교계를 통제하였는데, 대체로 화엄종과 연결된 데 반해, 전주 지역만 특별히 법상종 교단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한편 820년대 말~920년대 중반에 실상산문, 동리산문, 가지산문 사찰과 승려들은 선종 불교의 성행을 이끌었다. 전주 지역은 처음부터 가장 늦게까지 선승의 활동처로 주목되었다. 다만 이 지역 선종 사찰의 분포와 선승의 활동에는 무주 지역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무주 지역의 선종 사찰은 다른 지역보다 많이 분포하였고 선승의 활동도 활발하였다. 이 지역의 선승들은 선종 불교는 교종 불교도 함께 이해하여 ‘성상동일’, ‘교선동일’의 사상 경향을 내세웠다. 898년 전후에 무주 지역은 혼란 속에서 여생을 보내기에 알맞은 곳으로 인식되었으나 903년 이후 왕건이 궁예의 명령을 받아 나주를 공격하면서, 이러한 분위기는 갑자기 바뀌었다. 서남해 지역과 연고되지 않은 선승은 무주 지역에 귀국한 뒤 바로 다른 지역으로 이거하였지만, 서남해 지역과 연고된 선승은 무주 지역으로 귀국한 다음에도 여전히 머물면서 이 지역 선종 불교의 전통을 계승하였다. 혜철과 도윤의 법손이자 도선과 절중의 제자였던 경보가 그러한 역할을 맡았다.
912년에 견훤은 덕진포 전투에서 왕건에게 패배하였다. 선승의 귀국처는 전주 지역으로 변경되었고, 견훤의 불교 정책도 이 지역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견훤은 921년에 전주 임피현으로 귀국한 동리산문의 경보에게 전주 남복선원에 주석하도록 요청하면서 무주 지역 선문과의 관계를 복구하려고 하였다. 아울러 미륵사 개탑 불사를 설행하고, 해인사 관혜와 관계를 맺으면서 교종 불교에 대한 통제도 강화하였다. 그는 선사상은물론 화엄사상과 유식사상을 아울렀던 서남해 지역 불교계의 ‘성상동일’, ‘교선동일’ 기조를 계승하면서 왕실의 위상을 강조하고 후백제 영역 지배를 강화하고자 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서남해 지역 선승의 활동 양상
Ⅲ. 서남해 지역 선승의 사상 경향
Ⅳ. 서남해 지역 선승과 후백제의 관계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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