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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신은제 (동아대학교)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91집
발행연도
2014.6
수록면
51 - 74 (24page)

이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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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 신돈의 등용은 공민왕대 정치에서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본 논문은 그러한 이례적 사건이 발생하게 된 배경을 규명하기 작성되었다. 신돈의 등용은 공민왕의 의지였다. 두 가지 상황 하에서 공민왕은 이같은 파격적 정치를 단행했다. 첫째, 공민왕은 연저호종공신을 중심으로 정국을 운영해 왔었다. 그러나 정세운 살해사건을 계기로 공민왕의 측근들은 동요하기 시작했고, 결국 흥왕사의 변란에서 확인되듯이, 일부 세력은 공민왕 시해를 시도했다. 이 사건의 결과 공민왕의 충성스러운 측근들이 살해당했고 공민왕은 연저호종공신에 대한 신뢰를 거두었다. 이제 공민왕은 새로운 측근을 필요로 했다.
둘째, 기철이 제거된 이후, 원조정의 실력자 기황후는 공민왕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홍건적의 반란에 직면한 원조정은 공민왕을 징치할 형편이 되지 못했다. 홍건적이 진압되자 원은 즉각 공민왕을 폐위하고 덕흥군을 고려왕으로 책봉하였다. 덕흥군 책봉을 관철하기 위해 원은 군대를 고려로 파견했고 공민왕은 무장세력을 동원해 그들을 막아야 했다. 덕흥군의 침략을 성공적으로 물리친 후, 고려 조정에서 무장세력의 지위는 상승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공민왕 13년 기황후가 원조정에서 실각하고 원이 멸망의 길로 접어들게 되면서 공민왕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정국을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신돈은 이런 분위기에서 공민왕에 의해 등용되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권력의 중심부로 진입한 신돈은 공민왕의 기대에 부응해, 유숙과 김보와 같은 연저수종공신, 최영으로 대표되는 일부 무장세력, 이공수와 이수산과 같은 기씨일문과 가까웠던 인물들을 권력의 주변부로 몰아내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무장세력의 성장과 측근세력의 붕괴
Ⅲ. 원의 정국변화와 그 영향
Ⅳ. 신돈의 등용과 정치세력의 재편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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