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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하나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도시사학회 도시연구 도시연구 : 역사·사회·문화 제11호
발행연도
2014.6
수록면
37 - 68 (32page)
DOI
10.22345/kjuh.2014.6.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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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930년대를 전후한 공업도시 담론들과 영등포 편입 관련 경성부행정구역 확장 논의 등을 상세히 살펴봄으로써 1930~1940년대 한국 도시 변화에서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던 공업도시화 지향 기운과 그 영향력에 대하여 파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930년대에는 조선공업화 정책과 맞물려 도시별 공업도시 관련 담론이 활발하게 등장하게 되며, 1930년대 후반~1940년대에 이르면 도시별 공업도시화지향 경향이 다소 경쟁적인 양상마저 보이게 된다. 이는 공업도시화가 대도시화, 즉 도시의 영역 확장과 도시 발전과 밀접한 영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등포는 공업 입지에 유리한 각종 조건으로 인하여 이미 통감부 시절부터 장래 서울의 공업지역으로 점지되어 왔으며, 영등포의 서울 편입 여부는 1920년대에서 1930년대에 걸친 경성부 영역 확장 논의에서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논쟁거리 중 하나였다. 서울의 공업지역으로서의 영등포 편입 자체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으나, 수해와 교통 문제 등 당면한 어려움들을 이유로 영등포 지역의 당장의 편입을 반대하는 의견들이 대립하여 영등포는 경성부 확장안 결정 과정에서 편입과 누락을 반복하였고, 결국 1920년대에는 시기상조론자들의 의견이 수용되었다. 1930년대에 이르러 조선공업화정책이 시행되고 영등포의 제방과 간선도로 건설 사업이 실행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932년에 결정된 경성부 영역 확장안에서 영등포가 누락되어 있지만, 1933년 5월에 이르러 갑자기 영등포 편입이 결정되었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시사점을 제공해준다. 이의 직접적인 계기는 1932~1933년 사이에 결정된 영등포의 2개의 대규모 맥주 공장의 입지로 여겨지지만, 그와 더불어 더욱 심층적인 차원에서 1920년대 말에 이미 공업도시로 인식되었던 평양에 대한 경성의 경쟁심리, 그리고 당시 거의 모든 도시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공업도시화에 대한 소망이 이 시기 이러한 급격한 변화를 초래한 한 요인으로 작용하였을 가능성 역시 주목해볼 만하다.

목차

I. 머리말
Ⅱ. 1920~30년대 공업도시 담론의 내용
Ⅲ. 경성의 공업도시화 담론
Ⅳ. 행정구역 확장과 영등포 편입 논의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s

참고문헌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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