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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연숙 (한국고전번역원)
저널정보
한국고전번역원 민족문화 민족문화 제43집
발행연도
2014.6
수록면
335 - 370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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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친족공동체의 종중활동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宗人간의 상부상조, 계파 간의 연대, 仕宦者와 未仕宦者 간의 호혜와 수직적 재분배가 특정 세거지를 기반으로 하는 친족공동체가 아닌 대종중 차원에서 어떻게 작동하였는지를 고찰한 것이다.
본고의 연구대상은 대표적인 경화사족인 ?壤趙氏로 서울을 중심으로 廣州, 水原, 林川, 尙州, 海州 등에서 세거해 온 성씨이다. 풍양조씨 대종중은 17세기 중반에 시조묘의 재정비 과정에서 형성되어 시조묘에 대한 歲一祭와 성묘가 상례화 되는 18세기 중반까지 대종중 중심의 종중활동이 정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계파는 京派 가운데 趙顯命을 중심으로 한 청교파와 趙尙絅을 중심으로 한 쌍동파이다. 대체로 이 시기에 종족의 족세가 번창해짐에 따라 묘위답을 마련하여 분암인 見聖庵에 귀속시켜 세일제의 제수 마련, 벌초, 분암 수리 등의 비용으로 충당하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족보를 목판으로 간행하였고, 동시에 보각과 보각수호답을 장만하였다.
18세기 후반에는 종중의 중심인물이 조현명과 조상경에서 趙載得과 趙?으로 세대교체 되었다. 조엄이 오랫동안 종중 유사 일을 맡으면서 지속적인 묘위답 추매, 세일제 절목 제정, 重刊譜 간행, 譜閣守護畓 추매를 추진하고 진행하였다. 19세기 전반에는 조엄의 아들 조인영이 三刊譜를 간행, 묘위답과 보각수호답 추매 등을 주도하며 종중을 이끌었다.
족보 간행은 경파의 발의와 주도로 착수되어 創刊譜(1731)부터 三重刊譜(1826)에 이르기까지는 종인인 경상감사의 인적, 물적 지원과 종인들의 禮木錢, 名下錢으로 이루어졌다. 이처럼 대종중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爲先事業은 주로 京派의 주도아래 계파 간의 연대와 外任職에 있는 宗人들에 대한 도덕적 강제라고 볼 수 있는 禮木錢과 자발적 기부라고 볼 수 있는 別出錢 등 종인들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이루어졌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풍양조씨의 계파와 세거지
3. 대종중 형성과 종중의례 정비
4. 족보간행과 지방관의 역할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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