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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고소진 (충남대학교)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25호
발행연도
2012.8
수록면
241 - 277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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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피은편 신충괘관조에는 신충이 관직을 버리고 왕을 위해 단속사를 창건했다는 내용과 이순이 조연소사를 개창하여 단속사를 세운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기존의 신충괘관조 연구에서는 신충이 효성~경덕왕대 정치맥락을 살필 수 있는 인물로서 중요시 되었으나, 그가 단속사를 창건한 것으로는 보지 않았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헌덕왕대 만들어진 신행선사비를 통해 단속사가 북종선과 관련된 것으로 보았지만, 언제부터 단속사가 북종선과 결부되었는지는 명확하게 언급하지 못하였다. 신충괘관조 연구는 정치사, 사상사에서 개별적으로 필요한 부분만 언급되었다. 그리하여《삼국유사》피은편 신충괘관조의 전체적 분석을 통해 경덕왕대 정치·사회분위기와 단속사 창건, 그리고 신충괘관조가 피은편에 수록된 의미를 짚어보고자 한다.
信忠掛冠條를 신충·이순·일연의 평가 및 讚으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신충은 효성~경덕왕대 활동한 진골귀족이며, 왕권을 지지하는 충신이었다. 별기의 주인공인 이순은 6두품으로,《삼국사기》경덕왕 22년의 간언을 통해 왕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주었다. 일연은 별기를 수록하면서 "兩存之闕疑"라 하여, 이순과 신충이 단속사 창건에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신충괘관조에서 신충은 단속사를 創했고, 이순은 조연소사를 改創하여 단속사를 대찰로 만들었다고 한다. 경덕왕 22년에 신충이 퇴임하자 신충과 이순이 단속사를 세워 함께 머물렀던 것이다. 이러한 두 사람의 행적은 경덕왕 19년 당에서 돌아온 신행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그리하여 경덕왕 22년에 단속사와 북종선과 연결될 수 있었다.
피은편은 일연이 몽고 지배기에 숨음과 은거 즉 피은에 대해 고민했기에 만들어진 항목이다. 일연은《삼국유사》를 작성할 때 사료의 신빙성을 높이고자 했다. 피은편의 물계자조를 통해서 사료의 신빙성을 높이고자 한 일연의 의도를 알 수 있다. 또한 신충괘관조와 신주편 혜통항룡조를 구분하여 언급한 것도 사료의 신빙성 맥락에서 이해된다.
《삼국유사》에 경덕왕과 관련된 설화가 총 16개 항목이 확인되며, 일연이 경덕왕 시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충괘관조를 통해 일연은 세속과의 분리보다는 경덕왕대 불사활동의 일면과 사회적으로 忠이 중요시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Ⅲ. 信忠掛冠條 분석
Ⅲ. 信忠掛冠條와 避隱
Ⅳ. 斷俗寺와 信忠·李純·神行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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