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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유불란 (경희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제13권 제2호
발행연도
2014.9
수록면
121 - 141 (2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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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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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사옥(1801)을 전후해 본격화된 천주교 탄압의 정국 하에서, 교화에 따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관장에게 연유를 따져 묻고 나서는 신자들의 불복은 기존의 유학적 백성관의 틀로서는 대처하기 어려운 사태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배질서의 근간에 해당하는 愚民觀 그 자체에 대한 재고가 필요했으나, 그보다는 형식적인 복종만을 강요하는 손쉬운 ‘우격다짐’이 남발된 바, 결국 관민이 강압과 불복으로 서로 맞서는 대치 국면이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민란의 세기를 거치면서 심화된 인심의 위기 속에서 불복은 고착되었고, 끝내 미봉책으로 일관한 결과 마침내 관민 간의 ‘상호신뢰’는 완전히 무너지게 되었다. 본고에서는 邪獄을 계기로 촉발된 위정자들의 인심위기론에 주목해, 이로부터 불복하는 백성의 대두에서 주장하는 인민의 탄생에 이르는 백성-민의 변화과정을 분석해 보았다.

목차

국문 요약
1. 들어가며 : “죽을 때까지 不服”하는 자들의 등장
2. 표면화된 대치 : 신유사옥(1801)
3. 인심의 위기
4. 미봉책이 초래한 것
5. 결론을 대신하여 : 주장하는 인민들의 등장
< 참고문헌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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